[책]라오찬 여행기

입력 2009-01-14 06:00:00

류어 지음/김시준 옮김/연암서가 펴냄

청나라 말기, 중국 전역은 관리들의 부패가 심했다. 백성은 관리의 핍박에 시달렸고, 민심은 흉흉했다. 나라는 점점 쇠퇴의 길을 걸었다. '라오찬 여행기'는 당시 중국의 이 같은 현실을 비판하고 소설을 통해 대중을 각성시켜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구하려는 소설이다.

소설 '라오찬 여행기'는 떠돌이 의사 라오찬이 중국 각지를 돌며 병든 사람을 치료하고, 지방관리들의 치정 행태를 기록한 일종의 여행소설이다. 이 소설의 특징은 부정부패한 관리를 응징하기보다 청렴을 자처하고 백성들을 혹독하게 다루는 혹리의 학정을 폭로하고 비판한다는 점에 있다.

'라오찬 여행기'는 지은이 류어가 자신의 행적을 소설화한 자전적 소설로 알려져 있다. 라오찬이라는 떠돌이 의사가 각지를 편력하면서 보고들은 사건을 기록한 형식으로 당시 청나라 정치와 사회사상을 폭로, 비판한 소설이다.

제목의 라오찬(老殘)이란 늙고 힘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유기(遊記)란 여행자의 기록이라는 의미다. 즉 늙고 힘없는 사람이 각처를 떠돌며 견문한 사실을 적은 여행기록이란 의미를 갖는다.

소설 도입부에 라오찬이 만나는 부호 황뤠이허는 황하를 의인화해 만든 인물이다. 황뤠이허의 병은 바로 중국 최대의 관심사인 황하의 수재(水災)를 상징한다. 지은이는 산동순무 장야오를 도와 치수에 기여했던 사실을 소설에서 재현하고 있다. 이어서 두 친구와 일출을 구경하러 바다에 나가는 장면에서 묘사한 경치는 러시아와 일본의 대치를 상징한다. 북방의 큰 구름은 러시아를, 동쪽의 또 다른 구름은 일본을 지칭한다. 두 구름이 몰려와 서로 밀치며 물러나려 하지 않는다. 성난 파도에 표류하는 큰 배는 러시아와 일본의 전운과 서구 열강의 침략 앞에서 몸부림치는 중국을 비유하고 있다.

큰 배의 길이 이십삼사 장(丈)은 당시 중국의 행정 구역을, 조타를 관장하는 네 명은 당시 중국 조정을 좌지우지했던 네 명의 군기대신을, 여덟 개의 돛은 각 행성의 총독들이고, 배 위의 손님들은 국민들이며, 선객을 선동하고 금품을 갈취하는 사람들은 혁명당원들을 상징한다.

4장에서 11장까지는 선비 선쯔핑이 도화산에 들어가서 위구라는 처녀, 황루즈라는 도사와 세상사를 담론하는 내용이다. 이는 지은이 류어가 태주학파라는 종교를 믿으며, 그 교리를 설법한 것이다. 태주학파는 일명 대성교, 대학교, 성인교, 황애교라고 불리는 종교로 유, 불, 도의 세 종교를 혼합한 지방 종교다. 지은이는 소설 속에서 이 종교에 경도돼 미신 같은 예언을 하고 있다.

이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작품 전반과 후반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혹독한 관리들이다. 이들은 청렴하다는 것을 내세우며 백성들을 혹독하게 다룬다. 일반적으로 나라가 혼란할 때는 탐관오리가 등장해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려 지탄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비록 청렴한 관리이기는 하지만 그가 청렴성을 내세워 백성들을 얼마나 가혹하게 괴롭히는가를 묘사하고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혹독한 관리는 실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전반에 나오는 위센은 산동순무를 지내면서 의화단 사건 당시 다수의 기독교인들을 학살한 위센이고, 후반에 등장하는 깡삐는 군기대신을 지낸 만주 귀족 출신의 깡이가 모델이라고 한다. 두 사람은 청렴결백하다는 자부심만으로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혹독하게 탄압한다. 지은이는 이런 류의 사람을 탐관오리보다 더 나쁜 관리로 묘사하고, 출세욕과 아집이 뒤섞여 모순을 야기하는 관리사회의 전형적인 병폐로 보고 있다.

이 밖에 겨울철 꽁꽁 언 황하에서 뱃길을 뚫기 위해 밤새 얼음을 깨는 백성들의 고초와 몸을 파는 기녀들의 입을 통해 펼쳐지는 지식인들의 가식과 허위에 대한 폭로, 아버지의 권세를 믿고 횡포를 부리다가 경을 치는 쑹 공자 이야기들은 모두 당시 중국의 현실을 담고 있다.

고도의 상징과 비유, 함축으로 엮어진 이 소설은 예스러운 문체와 사실적이면서 정감어린 묘사로 읽는 이를 끌어당긴다. 중국 현대문학사의 거장 루쉰은 청말의 4대 견책소설의 대표작으로 이 소설을 꼽기도 했다. 464쪽, 1만2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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