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바닷새 한 마리가 노나라의 수도에 날아온 적이 있었다. 왕은 이를 상서로운 징조라 여겨 궁궐에서 큰 잔치를 열라 명하였다. 그리고 악사들을 불러 순임금 시절의 음악을 연주하게 하고 바닷새에게 황금 잔에 담긴 술과 여러 짐승의 고기로 만든 안주를 먹이려 하였다. 이 소란에 놀란 불행한 새는 물 한 모금 먹지 않더니 사흘 만에 근심과 슬픔에 젖어 죽고 말았다.(장자)
꽃이 핀다. 그러나 꽃은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 향기를 맡고 그 꽃을 감상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스스로 피어날 뿐이다. 나비와 벌을 비롯한 주위의 많은 존재들이 그 꽃에게 위로 받고 도움을 받지만 꽃이 피는 것은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꽃 자신을 위한 것이며, 자신의 존재를 이룬 것이며, 그때 그곳에는 충만함과 행복이 있다.
한 아이가 태어난다. 아이의 부모는 당연히 그 아이의 장래를 걱정하며 온갖 희생을 마다 않는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이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희생의 대부분은 아이를 꽃 피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장래에 남들이 우러러 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부와 명예와 권력을 누릴 수 있는 직업을 가지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 직업이 아이가 장래에 살고자 하는 삶과 부합하는지, 혹은 아이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창조적인 것일지는 중요하지 않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부와 명예와 권력만 보장된다면 아이의 꿈이나 재능, 행복 따위는 충분히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땅의 부모들이 그토록 많은 아이들을 의과 대학으로, 법조인의 길로 몰아대는 이유이다. 이 시대에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헤아려 판사가 되라 하고, 주리고 병든 이들을 구하는 히포크라테스로 키우기 위해 그 좁은 문으로 아이들을 등 떠미는 부모가 이 땅에 몇이나 되겠는가.
생각해 보라. 모든 아이들의 꿈이 의사와 변호사와 판·검사인 참담한 사회를. 생각해 보라. 꽃이라고는 온통 붉게 흐드러진 장미뿐인 세상을. 장미 향기만이 대지의 유일한 향기인 세상을. 그리고 생각해 보라. 온갖 색색의 꽃들이 제 모양대로 피고 어우러져 천만가지 향내로 대지를 축성하는 저 봄날의 산과 들을. 온갖 나비와 벌과 곤충들이 그 향기에 취해 춤추는 저 성스런 대지를.
기억하자. 신의 정원이 아름다운 것은 장미와 찔레와 개망초가 함께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신은 그 각각을 다른 향기로 완성했다는 것을. 저 우주의 무한한 별들은 혼돈이 끝에 이르렀을 때 탄생한 것임을. 그러므로 이 땅의 부모들이여, 우리가 이루지 못한 꿈은 이제 접어두자. 우리 아이들을 모든 줄 세우기와 비교하기로부터 해방시키고 우리가 원하는 꽃이 아닌 제 나름의 꽃으로 활짝 피게 하자. 그리고 바로 그날 한 줄 참회록을 쓰자. 우리의 진정한 꿈 또한 그것뿐이었노라고. 우리 또한 한 송이 활짝 핀 꽃이고 싶었노라고.
박진우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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