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의 시사 코멘트] 언론 관련 법안, 좀 더 숙고해야

입력 2009-01-10 06:00:00

'난장판, 싸움판, 식물원, 동물원….' 최근 파행사태를 겪은 국회를 빗대서 나온 말들이다. 오죽하면 "싸움을 하고 싶으면 폭력배가 되거나 권투선수가 됐어야죠"라는 중학생의 비난 글까지 회자가 될까. '발차기, 주먹질, 해머, 정, 소화전, 소화기, 몸싸움' 등 우리 정치권의 현실을 보여줄 건 다 보여준 것 같다. 참으로 딱한 일이다.

이번과 같은 국회 파행사태의 원인은 본질적으로 우리 정치구조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 전국적인 대중정당의 기반을 지니지 못한 정당, 정당정치가 실종될 수밖에 없는 정치문화, 국회의원 각자의 소신과 원칙에 따른 정치행위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의 미비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

그렇지만 드러난 현상만으로 본다면 여론은 여당에게 이번 파행사태의 책임을 더 두는 것 같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하락하고 쟁점 법안에 대한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은 것이 그 예다. 일차적 책임을 여당에게 지우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172석이나 가진 거대 여당이기 때문일 것이다.

핵심 쟁점 법안인 언론 관련 법안을 놓고 보자. 법안 내용의 당부를 떠나 여당은 크게 세 가지 점에서 무리수를 뒀다. 첫번째, 여당은 정상적인 법안 개정 절차를 생략하고 직권상정을 통해 개정하고자 했다. 소수당인 민주당은 이에대해 극단적인 방법으로 저지를 했다. 민주당의 폭력적 방법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다수결 만능의 함정에 빠진 여당의 책임도 그에 못지않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원칙이다. 하지만 그것이 만능은 아니다. 다수결만을 말한다면 국회가 무슨 필요가 있고 야당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그냥 다수당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니까 다수당은 소수당과 협의하고 절충해야 하며, 토론도 하고 여론수렴도 해야 하는 것이다. 다수결은 절차의 정당성을 담보할 때 의미를 갖는다. 여당은 그렇지 못했다.

두번째, 여당은 공공재인 언론 관련 법안에 대해 경제적 관점에서만 접근하고 설명했다. 올해 1월 1일부로 IPTV 상용서비스가 시작되는 등 뉴미디어 시대가 도래한 것은 사실이고, 이에 따른 법 정비는 당연하다. 하지만 정부 여당에서는 경제살리기에 보탬이 되고 일자리 창출이 기대된다는 설명만 되풀이했다.

언제부터인지 정부나 관련 기관에서는 특정 사업을 설명하면서 경제살리기에 보탬이 되고 일자리가 몇 개 창출된다는 식의 설명을 상투적으로 붙이고 있다. 며칠 전 기사의 한토막이다. "정부는 2012년까지 4년간… 50조원의 재원을 투입, 95만6천여개의 일자리를 창출키로 했다." 여기서도 일자리 창출 얘기는 빠지지 않는다. 언론 관련 법안이 개정되면 어떻게 어떤 일자리가 2만6천개 창출된다는 것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아마도 지금까지 발표된 일자리 창출 총계를 보면 오히려 일자리가 너무 남아돌아서 걱정해야 할 것 같다. 설명의 방식을 바꿀 때가 된 것은 아닌가.

세번째, 언론 관련 법안 개정이 갖는 정치·사회적 민감성에 대해 소홀히 했다. 우리는 암울했던 시대의 기억을 아직도 지우지 못하고 있다. 그 시대에는 신문에서 양식있는 기자의 기사 행간을 읽어야 했고, 그 행간의 내용은 외신 기사로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범죄자가 되었다.

그런 시대의 경험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경험의 기억들은 조지 오웰이 말한 빅브라더(Big Brother)의 출현 가능성을 본능적으로 경계하게 만든다. '1984'에서 빅브라더는 언어조작을 통해 철저한 사상통제를 한다. 이 조작된 언어는 뉴스피크(Newspeak)라고 불린다. 뉴스피크는 워낙 교묘하게 조작되어 날조하는 말과 행위가 거꾸로 진리를 추구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그런 시대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그런데 함께 겪었으면서도 여당은 그때의 기억들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정치는 바로잡는 것(政者 正也)'이고, 갈등의 해소와 관리는 대화와 타협밖에 없다는 점을 깊이 되새겨야 할 때인 것 같다. "사람이 멀리 내다보고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이 걱정이 있게 될 것이다(人無遠慮 必有近憂)"라고 한 공자의 말이 새삼 실감이 난다.

이상호 대구한의대 중어중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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