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가방이 제 평생의 운명이지요. 저는 즐거운 철가방입니다!"
대구 달서구에는 '스마일 철가방'이 살고 있다. 늘 웃음을 달고 살아 한번이라도 자장면을 시켜본 손님들은 그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차린다. 남보기에 폼나지도 않고, 추우나 더우나 오토바이 운전대를 잡고 온 동네를 돌아다녀야 하는 일이지만 자부심은 누구 못잖다.
행복 바이러스의 주인공은 30년째 중국음식을 배달하고 있는 김상일(46·달서구 본동)씨. 경북 의성에서 3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난 그는 도시에서 더욱 많은 인생의 기회를 얻고자 무작정 대구로 왔다. 30년 전 열여섯에 중구 동인동 한 중국음식점에서 잡은 철가방이 천생의 인연이 됐다.
그의 하루는 오전 9시 배달용 오토바이 점검에서부터 시작된다. 연료 체크에서 브레이크, 오일까지 꼼꼼히 살핀다. 배달 일은 고되다. 바쁠 때는 장갑조차 낄 새 없이 오토바이 운전대를 잡는다. 요즘 같은 추운 날씨엔 항상 두 손이 빨갛다. 승강기도 없는 5층 상가 건물을 하루에도 수없이 오르내리고, 밀려오는 주문에 식사시간을 놓쳐 불대로 분 자장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도 다반사. 오후 9시쯤 가게 문을 닫을 시간이면 배달한 곳이 100곳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하루에 한두 가지씩 손님들이 즐거워할 수 있는 우스갯소리를 챙기는 일도 잊지 않는다. "제가 찡그리면 손님들 음식도 맛이 없어져요." '즐거운 철가방'도 손님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김씨가 현재 직장에서 배달을 한 지 7년. 월성동 일대는 그의 손바닥 안이다. 아무리 구석진 곳도 10분 안에 도착하는 자타공인 '배달의 달인'이다. 주소만 봐도 누가 사는지 안다. 어려운 노인들이 배달을 시키면 자장면 보통도 곱빼기처럼, 단무지도 하나 더 챙긴다.
시련도 있었다. 10여년 전 인근 아파트에 배달을 하고 돌아오다 자동차와 부딪쳐 크게 다쳤다. 하지만 철가방을 놓지 않았다. "병원에 누워 있을 때도 단골 손님들 얼굴이 아른거렸어요. 두 딸과 아내 얼굴을 떠올리며 빨리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했어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월급에서 몇만원씩 떼내 복지관 등에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김씨는 자신의 인생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17년 전 결혼 때 몇만원짜리 월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것에 비하면 지금 2천만원짜리 전셋집은 대궐이다. 여느 배달원보다 훨씬 많은 급여도 그의 성실함 덕분이다. 내 집 마련을 꿈꾸며 조금씩 저축도 하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 가게를 갖고 싶은 소망도 있다.
"자기 욕심 때문에 남한테 못할 짓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 일이 한번도 부끄럽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저를 세상 최고의 남편과 아버지로 생각해 주는 가족들이 있어 더 힘이 납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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