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태의 중국이야기] 농촌으로 가는 대학생(下鄕)

입력 2009-01-10 06:00:00

베이징시 외곽의 한 농촌마을 어귀 버스정류장에 갓 부임한 '촌장서기' 왕치앙(王强)이 차를 기다리고 있다. 지나가는 촌민들이 왕치앙을 발견하고는 다가온다. 밝은 미소로 맞이하는 왕치앙, 그러나 순간 어정쩡한 상황이 연출된다. 말을 건네려던 상대방도 어떻게 호칭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왕치앙도 상대의 공손한 태도에 안절부절못한다. 상대의 입장에서는 왕치앙이 나이로는 아들 또래이지만 직책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간부, 그것도 농촌에서는 보기 힘든 대학생 출신의 간부이다. 농촌 간부의 대부분이 45세 전후의 나이에 중졸의 학력이라는 중국 농촌의 현실을 감안하면 왕치앙의 부임은 이례적이다. 왕치앙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농촌 간부로 자원하긴 했지만 도시에서 나고 자란 왕치앙으로서는 부자연스럽고 어색하기만 하다. 이런 왕치앙이 농촌으로 간 이유는 무엇일까?

'제2대 지식청년'이라고 자부하는 왕치앙의 대답은 명쾌하다. "문화대혁명시기의 하향운동처럼 조국이 필요로 하는 농촌으로 간다." 명분이 분명한 대답이지만 실제 속사정은 다르다. 취업난에 직면한 대학생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지난해 베이징시는 "사람은 많지만 할 일이 없고, 할 일은 많지만 일할 사람이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대학생을 농촌에 두는 계획'을 고안했다. 대학 졸업생을 선발하여 농촌으로 보내는 이른바 신하향운동(新下鄕運動)이 그것이다. 왕치앙은 그들 대학생 지원자 3천95명 가운데 한 명일 뿐이다. 이 계획에 참여하는 대학생들은 매월 600위안(12만원)에서 1천200위안 정도의 생활보조금을 받고, 대학원 진학이나 공무원 시험에서 혜택을 보장받는다. 정부의 입장에서도 좋다. 전국당정기관에 근무하는 전체 4천만명의 인원 중 자연감소분을 감안하더라도 매년 100만~150만명의 기층간부를 보충해야 하는 실정을 감안하면, 특히 농촌지역에서 우수인력의 충원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졸자의 농촌지원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실제, 지금 중국에서는 대학 졸업생을 농촌으로 보내야 할 만큼 사정이 절박하다. 최근 중국사회과학원이 발표한 2009년 '사회백서'에 따르면, 중국 대학생들이 농촌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실히 드러난다. 중국 정부의 공식발표와는 달리 대학생의 실업률은 이미 12%선을 넘고 있으며,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 정부는 2009년의 경제성장률을 8∼9%로 예상하고 있지만, 2008년 기준으로 보면 취업추동요인들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금융위기로 인해 중국의 수출고가 감소하면서 일자리 창출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해외무역량이 1% 변동하면 18만~20만개의 일자리가 영향을 받는데, 만약 GDP 성장 9%를 예상한다면 계산상으로는 전국적으로 매년 200만개의 일자리가 필요하지만 실제로는 많아야 120만명 정도가 취업하는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말 기준으로 67만개 이상의 중소기업들이 문을 닫았으며, 이 때문에 최소한 670만개의 일자리가 증발해버렸다. 도시실업률은 정부가 발표한 4.0%의 두 배가 넘는 9.4%에 이르렀고, 도시로 진출했던 농민공들이 줄줄이 귀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특히 노동집약형 산업이 중심이 된 쓰촨, 안후이, 허난, 후베이, 후난 등 5개 성의 경우는 귀향한 농민공의 수가 전체 농민공의 5~7%에 이르고 있다.

이들의 귀향은 단순히 '농촌에서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이동했던 2억3천만명에 이르는 농민공들의 귀향' 문제가 아니라 중국 현대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생산부대'의 후퇴라는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또한 '농촌으로의 복귀'로 처리될 수 있는 농민공 1세대의 귀향문제보다 더 심각한 '농민공 2세대'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1980년대에 출생한 그들은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농촌호구를 가졌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완전한 도시인이다. 습관화된 도시생활을 포기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다. 중국 정부가 대학생들을 농촌으로 유인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대학생취업문제의 해결과 동시에 농촌발전을 자극할 전위대가 필요한 것이다. 경기침체로 빚어진 농민공들의 귀향을 기회로 중국발전의 발목을 잡는 3농문제(농촌, 농민, 농업)를 해결하고 싶은 것이다.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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