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독도는 일본 땅이 아니다'고 명기한 일본 법령을 찾아낸 일로 전국이 떠들썩했다. 정보공개청구 소송 끝에 1965년 한일협정의 일본 측 문서 공개를 이끌어낸 지역 출신의 최봉태(47) 변호사와 문서 검토 작업 중 법령의 존재를 찾아낸 재일동포 3세 이양수(56)씨의 합작품이다.
사실 최 변호사에 있어 이번 법령 발견은 부수적인 결과다. 그의 전공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 운동이다. 그는 1997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법적 소송에 나선 이후, 10년 넘게 사비를 들여가며 일제 피해자 보상 소송의 무료 변론을 도맡아왔다.
6일 오후 대구 수성구 범어동 변호사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요즘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대미 고엽제 피해자 국가배상소송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독도 이슈 탓인지 최 변호사의 휴대전화는 끊임없이 울려댔다. 그는 "요즘 진행하고 있는 소송은 원폭피해자와 일본군 위안부, 태평양 피해자 지원 등 3건이고 준비하고 있는 소송이 더 있다"며 "피해자들이 살아있는 동안 빨리 재판해서 빨리 이겨야된다"고 했다.
◆일본도 인정한 '독도는 한국땅'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에서 제외한 '총리부령'을 어떻게 발견하게 된 거죠?
"지난해 7월 정보공개소송 끝에 일본 외무성이 공개한 한일회담 관련 일본 측 문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겁니다. (그가 군데군데 시커멓게 먹칠이 된 한일협정 일본 측 문서를 펼쳐보였다.) 이거 보세요. 중요한 내용은 전부 먹칠을 해서 공개를 했어요. 그래서 일본에 있는 소송지원팀에서 6만쪽 분량의 문서 중에 가려진 부분을 한국에서 공개된 문서와 비교를 하고, 관련 내용을 추적하는 중에 발견된 겁니다. 현재 문서 전체를 공개하도록 소송을 제기한 상태이고요. 만약 승소를 해서 완전 공개가 되면 지금까지 한일관계에서 몰랐던 다른 사실들도 밝혀질 수 있겠죠."
-한일협정 관련 문서 중에 한국 측 문서는 완전 공개가 됐는데, 일본 측 문서는 부분 공개만 된 상태이네요?
"양국의 한일협정 문서 공개 요구는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조선인 강제동원 징용 피해 보상 소송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나왔어요. (2000년 제기된 이 소송은 1심에서 패소했고, 현재 부산고등법원에서 2심이 진행 중이다.) 미쓰비시 중공업이 한일협정으로 피해 보상이 끝났다고 주장해서 아예 협정 내용 공개를 요구했죠. 한국 정부도 처음에는 공개를 거부했다가 2005년 두 차례에 걸쳐 전면 공개를 했고요. 일본 정부는 지난해에 주요 내용은 가린 채 일부를 공개했습니다. 사실 일본 측 문서 분석은 정부에서 해야지 재일동포가 홀로 해서야 되겠습니까. 결국은 무관심하다는 거예요."
-독도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는게 좋을까요?
"독도를 자기땅이라고 주장하는 세력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세력들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독도를 영토문제로 접근해서는 득될 게 없습니다. 침략 전쟁 수행 세력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려야 됩니다. 바로 일제시대 피해자 문제죠. 이건 인권과 평화, 민주주의를 위한 문제거든요. 피해 보상과 해명을 당당하게 요구하면 일본 내에 양심세력을 우군으로 만들 수 있고, 이들과 연합전선을 펼치면 한줌도 안 되는 제국주의 찬미 세력들의 기반을 허물 수 있습니다."
◆분노와 부끄러움으로 뛰어들다
-일제 시대 피해자와 관련된 각종 소송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뭔가요?
"1994~1997년까지 일본 도쿄대에 유학 중이었는데요. 1990년대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피해자들이 본격적인 법적 투쟁을 시작한 시기입니다. 1991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증인으로 나선 김말순 할머니가 대표적이죠. 일본 법정에 가보면 울화통이 터졌어요. 더구나 일본 변호사들과 시민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적극적으로 위안부 피해 배상 청구 소송을 하는 걸 보고 한국 변호사로서 창피하고 부끄럽더라고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한국에 오자마자 '정신대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을 만들며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죠."
-학창 시절에 민주화 투쟁 경험이 있습니까?
"관심은 많았는데 그러질 못했죠. 친구들은 목숨을 걸고 정의를 외치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살아야하는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법대를 나와 고시를 치는 건 '출세'를 위한 것이니까요. 그러다 도저히 적응을 못해서 군대에 일찍 다녀왔고, 일단 법대를 들어왔으니 사법시험을 보자 싶었어요. 대학 때 민주화투쟁을 못했다는 부채의식이 이런 운동을 하게 만든 것 같아요."
-일본 정부는 '그동안 충분히 사과를 했는데 뭘 또 사과를 하란 말인가'라는 정서가 강한 것 같습니다.
"피해자들은 진실한 사과를 요구하는 겁니다. 한 번 사과를 했으면 딴소리를 안 해야 됩니다. 또 그에 따른 내용도 있어야 합니다. 36년 동안 피해를 주고 '스미마셍' 그러면 끝나는 게 아니잖습니까. 사과를 했다면 최소한 그에 반하는 행위를 한 사람을 일본 내에서 처벌을 하든지 진실한 모습을 보여줘야죠. 18년 동안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 시위를 벌여온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책임있는 일본 정치인이 와서 사과한 적이 있습니까? 독일은 브란트 총리가 나치 피해를 입은 유태인들을 향해 무릎을 꿇고 사과를 했잖습니까. 그런 상징적인 행동조차 한 적이 없는데 사과를 했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정부와 기업의 무관심이 문제
-최근 일제 피해자들에게 대한 사회적 관심이 꽤 무뎌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죠. 아무래도 사는 데 여유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일제시대 피해자 문제를 제대로만 해결해도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됩니다. 정당한 보상을 받으면 그게 다 돈이잖습니까. 나라가 어려울수록 받아야 할 몫은 받아내야죠. 우리 정부와 기업의 무관심에도 분통이 터집니다. 피해자들에게는 한국 정부와 기업이 더 괘씸한 존재가 된 상황이에요."
-정부의 무관심이 어느 정도인가요?
"2006년 7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외교적 보호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아 행복추구권과 재산권 침해를 받고 있다'는 헌법소원을 냈는데요, 3년이 되도록 헌법재판소에서 심리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건 그냥 늙어 죽으라는 얘깁니다. 피해자들은 재판 결과를 떠나 오랫동안 싸우고 있는 경위라도 국민들에게 설명할 기회를 달라는 건데, 헌재는 '모르쇠'입니다. 정부는 일제 피해자 보상 문제가 갖는 미래 지향적 가치에 대해 인식을 못하고 있어요. 만약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이 정치권력을 유지했다면 이런 역사의 혼돈이 많이 줄어 들었을 것 같아요."
-현재 한·일 청구권 자금을 사용한 대표적 기업인 포스코를 상대로 소송을 하고 있죠? (일제시대 강제징용된 피해자 및 유족들은 2006년 포스코를 상대로 정신적 피해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포스코는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가 많은 신일본제철의 2대 주주로 상호주식을 보유하고,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등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고 있다.)
"포스코는 일제 시대 피해자들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진 회사입니다. 그런데 포스코는 신일본제철의 주주로서 피해자들의 요구를 전혀 반영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전범 기업을 도와주는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1심 판결에서 비록 패소는 했지만 재판부는 포스코의 사회적 책임은 인정을 했습니다. 포스코와 신일본제철이 피해자 문제 해결에 나서면 과거사를 둘러싼 한·일 양국 관계 개선에 물꼬를 틀 수 있습니다.
◆정당한 보상과 처우가 전쟁을 막는다
-요즘 베트남에서도 미국을 상대로 고엽제 피해자의 국가배상소송 방안 등을 연구하고 있죠?
"일제시대 피해자가 정당한 보상을 받아야 하듯이 우리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사실도 역사적인 부채니까 정리를 해줘야죠."
-왜 앞장서서 역사적 부채를 해결하려고 하세요?
"모든 인권이나 행복의 기초는 평화예요. 변호사로서 평화 실현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은 전쟁 피해자의 보상 문제를 해결하는 겁니다. 전쟁을 없애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전쟁 피해자들에게 정의를 돌려주면 됩니다. 전쟁을 했을때 얻는 이득보다 피해 보상 비용이 더 크다면 전쟁을 하지 않겠죠. 일본이 침략전쟁을 벌이고도 반성을 하지 않는 이유는 걸맞은 비용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피해자들에게 정당한 보상과 걸맞은 처우를 해준다면 전쟁을 막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일제 시대 피해자 관련 활동을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기억은 뭔가요?
"원폭 피해자들이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부산지법에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패소한게 가장 아쉽죠. 대한민국 법정에서 졌으니 더 기가 막히고 억울해요. 피해자들이 고령이라 되도록이면 화해를 하자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미쓰비시 중공업은 화해할 생각이 전혀 없답니다. 얼마나 한국을 무시하는 태도입니까. 다음달 3일 부산고등법원에서 2심 판결이 나는데 전범기업이 또 이긴다면 변호사로서 무능함과 자괴감을 느낄 겁니다. "
◆과거사 청산은 현재의 문제
-한나라당이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 등 14개 과거사 위원회를 진실·화해를 위한 위원회로 통·폐합한다는 법안을 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말이 안 되는 작태라고 봅니다. 지금 진실과 화해 위원회가 자체 업무도 벅차서 감당이 안되는 판국인데 나머지 과거사위원회를 다 통합한다는 건 하지말라는 이야기거든요. 더구나 아직 일본으로부터 사죄나 배상을 못 받고 있는데 누구를 위해서 없앤다는 말입니까. 일본 국회의원들도 한일 관계를 위해 통폐합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그러면 안 되죠."
-이명박 정부 이후 근현대사 교과서 개편과 건국절 논란, 식민지 시절 재평가 등 과거에 비해 상당히 보수화된 역사 인식 움직임이 두드러지는데요.
"일본의 침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발언은 수치상으로 더 발전이 된다면 다시 식민지가 돼도 용인하겠다는 겁니다. 또 임시정부를 무시하고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삼자는 주장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에도 반하는 얘기입니다. 그런 논리라면 일제 시대 피해에 대해서 1965년에 한국정부가 협상을 하면 안 됩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전까지 우리는 일본 국민이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 국민들이 세운 정부가 됩니다. 정말 앞뒤가 안 맞는 얘기죠."
-10년 후에 한·일 간에 어떤 일들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까?
"일제 피해자들이 해방이 됐으면 좋겠어요. 일본 정부가 보관돼 있는 노임 미불금을 출연하고, 우리 정부와 양국 기업들도 돈을 내서 한일평화기금을 만들고 양국 간에 평화사업을 활발히 펼쳤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피해자들이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2010년이 나라 빼앗긴지 100년이거든요. 그걸 계기로 한일 관계가 새로운 관계로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있습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최봉태는?=1962년 대구 출생. 서울대 사법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부터 변호사로 일했다. 1994년 노동법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 도쿄대에 유학을 갔다가 일제시대 피해자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다. 1997년 대구에서 '정신대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을 만들며 본격적인 활동을 벌였다.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추진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2001∼2004년)과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2005∼2006년) 등을 지냈다. 또 태평양전쟁 피해자단체 연대모임인 '강제동원 진상규명 시민연대'의 법률자문을 맡아 일제강점기 피해자와 관련된 각종 소송을 도맡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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