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줄게 福을 다오" 저금통, 불경기 타고 인기

입력 2009-01-10 06:00:00

"땡그랑 한 푼 땡그랑 두 푼 벙어리 저금통이 아이구 무거워 하하하하 우리는 착한 어린이 아껴쓰고 저축하는 알뜰한 어린이." 옛날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 부르던 '저금통'이란 노래다. 빨간 돼지저금통에 동전을 한 닢 두 닢 넣을 때 나던 딸그락거리는 소리는 기분을 좋게 했다. 예전에는 빨간색 복(福)돼지 한 마리 안 키우는 집이 없었다. 책상 위 한쪽을 차지하고 앉아 주인이 던져주는 먹이(?)를 날름 받아 먹었다. 동전이 천대받는 시대이지만, 돼지저금통을 이용한 추억 만들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네 이웃들의 돼지저금통 얘기를 들어봤다.

◆돼지저금통은 '희망'이다

40대 직장인 박모씨의 두 딸은 요즘 저금통에 용돈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다. 동전이 생기는 족족 바로 저금통에 넣는다. 게임기를 사기 위해서다. 주부 K(39)씨의 딸들도 열심히 돼지저금통을 채우고 있다. 올여름 가족여행에서 쓸 경비를 직접 마련하는 중이다. 회사원 송경석(34)씨는 "돼지저금통이 목돈의 힘을 알게 해줬다"고 회상했다. '쌓이는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돼지저금통은 요즘 자녀에게 경제 공부를 시키는 방편도 된다. 번 만큼, 필요한 만큼 쓰고 저축하면서 경제 관념을 자연스레 익히게 한다. 매일신문 독자 최정희씨도 두 자녀와 함께 해마다 돼지저금통을 장만하고 남은 돈을 아이들 통장에 넣어준다. 조금 배가 부르다고 당장 토해내게 하지 말고 끈기 있게, 동전이 생길 때마다 돼지밥을 주게 한다. 1년 수확의 기쁨을 맛보게 하자는 취지에서다.

저금통 속 동전을 호시탐탐 노리는 사람들에겐 돼지저금통은 '서리'의 대상이다. 정모(51)씨는 "초등학생 시절에 형님이 저금하면 도구를 이용해 동전구멍으로 동전을 하나씩 빼내서 군것질하던 짜릿한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절도를 막기 위해 비책을 써도 '잔머리 도사'들의 손을 비켜갈 수는 없다. 그러나 결국엔 진상이 드러나 매를 맞아본 기억도 한두번씩은 있을 것이다.

◆돼지저금통은 '사랑'이다

직장인 이모(45)씨는 "집에 가면 꼭 동전이 생기는데 모두 저금통에 넣고 있다"고 했다. 동전 가지고 다니는 것이 귀찮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결과는 꽤 짭짤했다. 최근 조그만 돼지저금통을 따 보니 10만 원이 넘는 돈이 나왔다.

'메가쇼킹'이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진 만화가 고필헌씨도 평소 주머니나 가방에 동전이 들어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돼지저금통 배를 채웠고 모은 돈을 보육원에 기부했다. 돼지저금통 배를 따니 70여만원이 나왔다. 그는 그 과정을 '옴팡지게' 만화로 풀어내 재미를 선사했다.

고씨처럼 돼지저금통 가득한 돈으로 따뜻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례는 많다. 지난 연말 서울 보신각 타종식에 참석해 제야의 종을 울린 '기부천사' 이문희(48·여)씨. 이씨는 충북 영동의 재래시장서 붕어빵을 구워 팔면서 매일 500원짜리 동전 한두개씩을 돼지저금통에 모아, 연말마다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 기탁해 왔다. 구세군 자선냄비에도 정성껏 배를 불린 돼지저금통을 기탁하는 시민의 손길이 여전히 계속됐다. 지난 2006년에는 경북 영천에서 돼지저금통 1천개가 모여 2천여만원에 이르는 돈이 모금됐다. 이 돈은 영천의 서울 유학생들이 이용할 '영천학숙' 건립을 위한 종자돈으로 쓰였다.

SBS 드라마 '파리의 연인'(2004)에 등장한 저금통은 사랑의 징표로 사용됐다. 돼지저금통은 정치적인 의미로도 쓰였다. 지난 2002년 제16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시 노무현 후보 지지자들은 부패 없는 깨끗한 선거를 희망하며 노란색 '희망돼지'를 나눠주기도 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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