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착한 경제와 현해탄

입력 2009-01-08 06:00:00

부산.후쿠오카 사호교류 협력/긴밀한 '지역 호혜' 고리 싹터

'착한 경제'란 말이 대유행이다. 지금 우리의 경제난을 넘어설 대안이 '경제만능주의' 따위가 아니라 '착한 경제'라는 것이다. 경제학 용어로 바꾼다면 '互惠市場(호혜시장)'쯤 될까. '호혜시장'이라면 바로 고대의 '神市(신시)' 같은 것이고 東學(동학)의 최해월 선생 표현대로 '비단 깔린 장바닥'이겠다. 요컨대 '사랑과 모심의 경제'인데 그것이 그리 쉬울까.

현재의 금융위기가 잡힐 것으로 예상되는 2010년, 그러니까 내년 4분기 쯤부터 저 꿈결같은 대안 '착한 경제'가 우리의 시장질서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인가. 당장은 아니라도 그 싹이 참으로 나타나기 시작할 수는 있을 것인가.

'호혜시장'은 정확히 말해 '호혜, 교환, 획기적 재분배'가 함께 보장되는 객관적 시장패턴을 말한다. 그것은 현대자본주의의 최대 치명상이 될 것이라는 '과도한 환경비용' '도박성' '국가 개입 기능의 저효율'을 모두 해결하는 차원이다. 따라서 그것은 아시아적 네오·르네상스이자 생명 위기와 기후 대혼돈을 벗어날 세계문화 대혁신의 기초 조건이다. 그런데 지금 여기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리라는 것인가. 꿈도 야무져라.

그러나 꿈은 언제나 밤에 꾸는 것. 지금의 종말적 금융위기·경제파탄이 기이하게도 도리어 동아시아·태평양 생명과 평화의 신문명의 꿈을 배태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기이하고 또 기이하다. 미국 국가정보위는 세계 현실을 한마디로 규정하여 '권력과 자본의 중심이 서방에서 동방으로 이동하면서 동시에 전세계에 골고루 다극체제가 형성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혼돈학에서 '중심성이 배합된 해체(the integrated network)'라고 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혼돈적 질서'요 내 용어로는 이른바 '華嚴開闢(화엄개벽)'이다.

불교학에서 개체 안에 일체가 살아있는 것을 '普門(보문)'이라 부르듯이 이 현상은 한국의 경우 모든 지역들 안에서, 그리고 사이에서 동일하게 그러나 다양하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또 그래야 마땅할 것이다. 마치 '달이 천개의 강물에 모두 다 다르게 비침(月印千江)'이요 '한톨의 작은 먼지 안에도 우주가 살아있음(一微塵中含十方)'과 같다. 이러한 시대엔 과연 어떤 시장이 나타날까. 또 한번 화엄경을 인용한다. '함께 먼지를 뒤집어쓰지만 결코 물들지는 않는, 중생의 삶을 이롭게 하는 항상된 진리의 실천(同塵不染利生常道)'의 시장, 그리고 '장바닥에 들어가되 손을 내리는(入纏垂手)' 바로 '착한 경제' 이야기가 거기 나온다. 이 것이 고대 아시아의 '호혜·교환·획기적 재분배'의 '神市(신시)'로 이미 나타났었다. 나는 현재의 이 시기를 후천개벽으로 본다. 후천개벽은 다른 말로 '옛날로 들어가 새로움으로 나옴(入古出新)'이기도 하다.

오늘의 세계경제 안에서 생명 본연의 '모심'이 새롭게 회복되는 것, 이것이 '착한 경제' 아닐까. 나는 지난해 11월 초 일본의 후쿠오카에서 열린 '호혜를 위한 아시아민중기금'의 아시아확대회의에 그 제안자로 참석하여 기념강연을 한 바 있다. 일본의 生協(생협), 환경운동들과 한국의 일부 생협 및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팔레스타인,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의 여러 관련 민중단체들이 거기서 '아시아 호혜시장'의 방향성에 뜻을 모았다. 뒤이어 12월에는 같은 장소 후쿠오카에서 한·중·일 정부 수장들의 통화통합회의가 열렸고 이것은 정례화된다.

우연의 일치인가. 필연의 조화인가. 통화 맞바꾸기는 경제통합의 전단계다. 그리고 그 통합의 장기성은 필연코 경제체질을 바꾼다. 그것은 곧 '호혜시장'의 조짐이고 '착한 경제'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말이다. 그러나 일본인에게도 착함을 기대할 수 있는가. 일본자본의 위력을 믿고 '다시 한 번 100년!'을 외치며 코냑을 든다는 일본인들에게, 더욱이 그 100년이 다름아닌 1910년, 한일합방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착한 경제'를 기대할 수 있는가.

이래서 '同塵不染(동진불염)'이라는 불교식 이중논리, 동학식의 '아니다 그렇다(不然其然)'의 대응이 요청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서로 상이한 정도와 각도에서 중국이나 태평양 너머 미국에도 해당된다. '착한 경제'엔 반드시 '지혜와 실천적 용기(文殊와 普賢)'가 이중적으로 전제되는 까닭이다.

전국 각 지역에 각각 그 나름 나름으로 거대한, 그러나 참으로 슬기로운 삶의 변화를 가져올 '착한 경제'의 고리가 우선 일본 후쿠오카와 부산 사이의 현해탄에서 싹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또 한번 기이하다. 부산이 후쿠오카와 현해탄을 오가며 이미 두 곳 사이의 긴밀한 '지역 호혜'를 시작했음이 참으로 기이할 뿐이다.

김지하(시인·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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