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섭리는 정직하고 공평하다. 해가 뜨면 지고, 어둠 이후에는 빛이 나온다. 세상을 삼킬 듯 거센 태풍이 지나고 나면 고기떼가 몰린다. 불타 모든 것이 소멸된 자리에는 반드시 새싹이 돋아 숲을 만든다. 그래서 2009년 새해 벽두, 희망을 기다리는 마음이 다른 해보다 더욱더 간절하다. 지난 한 해의 풍파가 너무나 크고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지진으로 쑥대밭이 되었던 중국의 스촨(四川) 원촨(汶川) 지역, 채 수습되기도 전에 올림픽 열기에 묻혀버린 상처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2008년이 저무는 세모(歲暮)에 일단의 무리가 스촨을 찾았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비롯한 국가 최고 지도자들이다. 스촨성 당서기 류치빠오와 성장 장쥐펑(蔣巨峰)을 대동한 후진타오 일행은 도착하자마자 더양, 청두를 비롯한 중요재난지구의 재건현장과 기업들, 농촌 가옥들을 찾았다. 이재민 수용시설과 학교, 보건소 등을 돌며 생활실정을 살핀다. 이재민들과 복구지원자들을 만나 안부를 묻고 새해를 축복한다. 6천500여명의 이재민이 거주하는 쟝옌시(江堰市)의 한 판자촌을 방문한 후진타오, 주민들의 손을 잡으며 일일이 묻는다. "판잣집이 춥지 않습니까? 생활에 어려운 점은 없습니까? 재건에 불만족스러운 사항은 없습니까? 먹는 것은 어떻습니까?" 주민 티엔쭈안꾸이(田傳貴)의 집을 찾았다. "중앙의 동지들 모두가 재난지역 여러분들을 충심으로 걱정하고 있소. 겨울을 어떻게 지낼까 걱정하거나 새해를 어떻게 맞을까 두려워하지 마시오. 비록 지금 생활이 불편하더라도 조금만 기다리시오. 당과 정부가 재난지역재건계획을 수립하고 추진 중에 있소. 함께 노력하여 빠른 시간 내에 더 좋은 생활환경을 만들어냅시다." 감동한 촌로의 눈에서 눈물이 맺힌다.
핑무현(平武縣) 핑통진(平通鎭) 니우페이촌(牛飛村)의 한 치앙족(羌族)촌, 지진 때문에 마을 가옥의 대부분이 붕괴되었다. 자택수리를 금방 끝마친 촌민 쟈오린(趙林)의 집, 국가 최고지도자가 방문한다. 전대미문의 사건에 당황한 부부는 마당에 핀 붉은 치앙화(羌花) 한송이를 꺾어 후 주석에게 내밀며 환영한다. 집안을 둘러보며 이것저것 묻던 후 주석이 주방을 겸한 거실에 앉자 쟈오린 부부는 주안상을 준비한다. 신년축하를 위해 새로 빚은 포곡주(苞谷酒)에 안주는 주방에 걸어두었던 말린 돼지고기가 전부다. 촌민들과 둘러앉은 후 주석은 오랜 시간 함께 마시고 이야기한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에 정이 넘치고, 어느덧 지진의 상흔들에서 봄 이야기가 돋는다.
지진 기간 학교 전체가 붕괴되어 많은 희생자를 내었던 베이촨치앙족(北川羌族) 자치현의 꾸이시(桂溪)중학교, 신사옥 공사가 한창인 가운데 1천200여명의 학생들이 합판으로 만든 임시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 책 읽는 소리가 낭랑한 1학년 교실, 수업주제는 '사랑의 힘'이다. 그때 새로 부임한 후진타오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선다. 생활 중에서 사랑의 사례를 이야기할 학생이 있냐고 묻자 겁먹은 학생들이 주저한다. "지진은 무정하지만 사람에게는 사랑이 있습니다. 당과 정부 그리고 사회 각계각층이 힘을 모아 빠른 시간 안에 판자교실을 더 넓혀 주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영원히 부수어지지 않을 학교를 짓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당과 정부 그리고 사회가 가진 여러분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우리들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요?" 후진타오 선생님의 질문에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아이들,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후진타오의 행보, 신파극 같은 이야기들이다. 우리네 이야기로 그저 그렇고 그런 정치인들의 수작일 수도 있다. 촌로의 술친구도 되고 아이들의 선생님도 되는 후진타오 주석을 명연기자라고 치부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 할리우드 영화에 길들여져 걸핏하면 삿대질하고 시도 때도 없이 주먹질하는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장면 한 장면마다 감동이 있고 정이 넘친다. 촌로의 손을 맞잡은 후진타오, 그 역시 체온은 기껏해야 37℃ 내외일 게다. 갑작스런 추위에 손발이 얼었을 때는 뜨거운 열이 아니라 따스한 체온으로 녹여야 동상에 걸리지 않는다는 간단한 상식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2009년 새해벽두, 강추위에 떠는 사람들에게 강열한 여름이 아니라 불탄 자리에는 반드시 새싹이 돋는다는 확신, 그리고 따스한 봄볕을 주고 싶다.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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