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老테크 안나서면 당신도 '젖은 낙엽'

입력 2009-01-01 00:00:00

['인생2막' 10년 후 설계] <상>절망에 빠진 실버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저녁 늦게 귀가해 잠자리에 듭니다. 당신은 정말 바쁘게 일합니다.

그런데 잠시만 생각해 봅시다. 당신은 당신이 벌어들이는 수입의 과연 몇 %를 마음대로 쓸 재량이 있습니까? 열심히 일한 당신의 수입 대부분은 이미 용처가 정해져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결정해 쓸 돈은 없습니다. 당신의 노후를 위해 준비할 돈이 넉넉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구적 대공황이 닥치면서 다시 조기퇴출의 시대가 왔습니다. 당신보다 불과 몇 살 많지 않은 선배들이 직장을 떠나고 있습니다.

당신이 45세라면 앞으로 33년이나 더 살 수 있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수십년이나 지속될 노후를 준비하고 있는지요?

매일신문은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중년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고려장이란 말을 아시지요? 당신이 수입의 대부분을 쓰면서 길러낸 자녀들이 당신의 노후를 책임지지 않는다면 어떡하시겠습니까? 자녀를 원망하시겠습니까?

아이들 학원비도 좋고, 아파트 크기를 늘리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당신의 노후를 위해 바로 지금부터 뭔가를 해야 합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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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둘러봐도 불쌍한 노후를 보내는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은퇴 이후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연금 수혜자인 공직 은퇴자들 일부까지 엉망진창의 노후를 보내고 있다.

◆절망의 세월

이점이(가명·73) 할머니는 자식으로부터 버려진 노인이다. 치매기가 생기면서 요양병원에 들어갔던 그는 최근 몇달 동안 자녀들로부터 병원비 송금도 받지 못했다.

이따금 걸려오던 아들로부터의 전화도 끊어졌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큰 어려움 없이 살았던 이씨. 그러나 남편이 사망하면서 집과 땅을 아들에게 넘겨준 뒤 그는 경제적 결정권을 잃었고 결국 빈털터리 노인이 됐다.

몇년 전 교직을 떠나 은퇴 생활에 들어간 김학수(가명·67)씨. 그는 퇴직을 할 때 퇴직금을 매월 연금으로 받지 않고 일시금으로 받았다. 자식이 사업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 보탬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연금을 아들에게 주더라도 노후자금은 아파트 한채와 그간 모은 금융자산으로 충당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김씨 큰아들은 사업을 하다 크게 실패를 했고 아들에게 섰던 빚 보증은 남은 집까지 날아가게 만들었다.

사업에 실패한 아들은 부모의 생활비를 대 줄 형편도 안 되고, 작은아들은 "형에게 돈을 그렇게 많이 주더니 이제는 나한테 손을 벌리느냐"며 부모를 외면했다. 김씨 부부는 단칸방에서 절망의 생활을 보내고 있다.

건물 경비원으로 일하며 월 80여만원을 번다는 권용기(가명·67)씨는 "대학까지 졸업시킨 1남 2녀가 있지만 자기 생활도 빠듯한 눈치다. 생활비를 보태달라는 말을 하기가 힘들다. 아직 건강이 허락하니까 계속 벌어야 한다. 자녀가 부모의 애를 먹이지 않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라고 했다.

◆당신도 그럴 수 있다

얼마 전 고향 친구들과의 송년회에 나갔던 회사원 강영민(가명·45)씨. 그는 그날 이후로 마음이 편치 못했다. 하루하루 빠듯하게 살아가느라 노후준비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꽤 많은 친구들이 은퇴준비를 위해 착실히 저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녀들이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수입의 절반 이상을 학원비에 쏟아넣고 있는 강씨. 친구들은 "'품 안의 자식'이란 생각을 해야 한다. 자녀에게 모든 수입을 쏟아붓다가는 형편없는 노후를 보내게 될 것"이란 충고를 강씨에게 해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전국 노인생활실태 및 복지욕구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월평균 소득은 48만6천원에 불과했다. 20만원 미만도 33%에 이르렀다. 경제적으로 노후준비가 된 노인은 28.3%에 불과하고 71.7%의 노인이 노후생활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 절대 다수의 노인들이 경제적으로 궁핍한 처지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비단 경제적인 문제만이 노인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니다. 자녀의 독립으로 노부부만 남는 시기를 빈둥지(empty nest) 시기라고 하는데 자녀의 빈자리로 인해 우울, 상실감 등을 경험하게 되는 정서상태는 빈둥지증후군(Empty nest Syndrome)이라는 정신적 질환을 낳기도 한다. 노인 치매유병률 증가와 노인성 우울증 확산, 그리고 노인자살률의 증가는 고단한 노인들 삶의 한 단면이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별다른 준비 없이 은퇴한 60대를 '젖은 낙엽'이라고 부른다. 구두나 몸에 붙으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 낙엽처럼 퇴직 후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자녀들에게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장수에 숨겨진 위험

우리나라는 급속하게 늙어가고 있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이미 2000년에 총인구 중 65세 노인인구 비율이 7.2%를 기록, 고령화사회에 진입했다. 2018년에는 14.3%로 고령사회, 2026년에는 20.8%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 속도도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선진국 중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일본이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가 되는 데 소요된 기간이 24년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18년이다. 고령화사회에서 초고령사회가 되는 데 소요되는 기간도 일본에 비해 10년이나 빠른 26년으로 예상된다. 2030년이 되면 도심 한복판이 젊은이가 아닌 노인들로 넘쳐나는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통계청은 은퇴 이후 삶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를 통계치로 내놨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수명을 계산해낸 것이다.

지금 45세인 남자라면 앞으로 33년을 살 수 있다. 45세 여자라면 39년을 더 산다. 지난해 태어난 아기라면 79.6세까지 살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됐다.

통계청은 앞으로 더 살아갈 수 있는 해, 즉 기대여명이 매년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100세인도 머지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균수명 100세는 엄청난 경제적 고통을 수반할 것이 확실시된다.

고령화 과정에서 노후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은 저금리다. 두자릿수의 금리로 돈을 굴렸던 부모 세대들은 어렵지 않게 노후를 살아갈 수 있었다. 10%의 금리로 정기예금에 3억원을 넣었다면 한달 이자로 세금을 제하고도 200만원을 족히 받았다. 때문에 노후생활비 걱정은 없었다.

그러나 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5%라면 한 달에 100만원 정도니 노후생활비에 턱없이 모자란다. 고령화와 저금리가 동시에 찾아오면서 더 큰 은퇴 충격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계명대 재무상담클리닉센터 허수복 부센터장은 "오래 사는 것이 행복이 아닌 시대가 찾아왔다. 경제적인 준비가 없다면 장수는 오히려 불행한 것이다. 지금 40, 50대 베이비 붐 세대들은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마지막 세대이면서 자식들로부터 버림받는 첫 세대가 될 것이다. 바로 지금 노후를 위한 대비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 젖은 낙엽=은퇴한 노인을 구두나 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낙엽처럼 자녀에게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비유해 일본에서 쓰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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