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제빵 역사 산증인 소량'전문화로 입맛 사로잡았다
최무갑(66)씨는 '빵'으로 일가를 이룬 사람이다. 지난 48년간 외길을 걸으며 대구 제빵 역사의 산 증인으로 통하는 그는 케이크 전문화로 '제2의 빵' 인생을 산다. "3대째 빵을 만들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님은 1950년대 전후 수형당과 함께 대구 제빵 공장의 쌍두마차로 명성을 떨쳤던 삼미제과를 창업하셨죠. 덕분에 어려서부터 빵 기술을 배워 한평생 빵을 굽다 10년 전 동성로 아카데미 골목에 '최가네 케이크'를 열었습니다. 지금은 두 아들이 함께 일을 거들며 가업을 잇고 있죠."
최씨의 빵 인생은 그의 나이 열여덟 무렵부터 시작됐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수형당에서 일을 배웠습니다. 수형당은 일제 시대 때 생겨난 대구 최초의 빵 공장이죠. 수형당에서 일하던 그때부터 앙꼬'소브로'도넛'찹쌀 같은 여러 제빵 기술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어요."
이런 그가 대구 제빵 산업 한복판으로 뛰어든 건 1970년대 즈음이었다. "6.25 이후 국내 제빵 산업은 일대 전환기를 맞습니다. 빵 공장이 사라지고 윈도우 베이커리 시대가 열린 거죠. 돌이켜 보면 그때 그 시절엔 제과점 만한 데가 없었어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언제나 제과점에 모여 얘기꽃을 피우고 빵 선물을 주고 받았으니까요."
당시 대구 제과점의 계보는 풍곡당'일선당'덕인당'고려당'구일 제과 등 1세대에서 뉴델'뉴욕'런던 제과 등 2세대로 이어졌고, 뉴델제과 공장장으로 10년 가까이 맹활약했던 최씨 또한 제과점 경영에 직접 도전한다. "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죠. 빵을 만드는 것과 빵 가게를 경영하는 것은 확실히 달랐습니다. 킹뉴델에 이어 로마제과를 창업했는데 3년 만에 부도가 났어요."
그후 최씨는 고향 경주로 돌아와 다시 빵 굽는 일에 전념했고 도쿄호텔 베이커리 숍에서만 18년간 제빵 작업을 총괄했다. 그러다 정년퇴직을 앞둔 1998년쯤 제2의 창업을 고민하기 시작했지만 당시 제과점 상황은 또 변해 있었다. 90년대 후반부터 자본력으로 무장한 메이커 제품의 대량 생산 체제가 빠르게 시장을 장악하면서 대구 토종 제과점이 모두 문을 닫고 만 것. 무작정 제과점 문을 열었다간 똑같은 실패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결심한 게 케이크 전문점입니다. 이것 저것 다 만드는 보통 제과점으로는 메이커와 경쟁할 수 없으니까요. 소량'전문화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했고 아무나 만들 수 없는 케이크라면 승산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최씨의 예상은 적중했다. 본사에서 대량 생산해 전국 각지로 배달하는 메이커 제품과 달리 그날 만들어 그날 바로 파는 최가네 케이크는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딸기'녹차'고구마'복분자'초콜릿 등 20~30여 종류의 케이크를 직접 개발한 뒤 독특한 데코레이션(장식)을 더해 선풍적 인기를 끈 것. 그는 "IMF시절 대구에서는 처음으로 조각케이크도 팔기 시작했다"며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젊은 세대들이 조각 케이크에 열광했다"고 귀띔했다.
그렇게 10년이 흐른 지금 최가네 케이크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벤치마킹을 올 만큼 성공한 제과점으로 정착했다. "5층 점포의 4,5층에서 케이크를 만들죠. 보고 싶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겐 처음 시트(틀) 제조에서부터 급속 냉동과 생크림 바르는 과정까지 모두 공개합니다. 빵을 만드는 모든 후배들이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죠."
그렇다면 최가네 케이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제빵 비결은 뭘까. "빵 만드는 기술이 전부가 아닙니다. 어느 정도 기술에 도달하면 결국 종이 한장 차이에 불과하니까요. 빵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건 청결과 정성이에요. 지난 10년간 케이크 만드는 점포 바닥에 물 한방울만 떨어져도 난리법석을 떨었죠."
그렇다고 최가네 케이크의 빵 기술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케이크는 반죽 맛이다. 반죽의 맛은 계란의 질과 굽는 온도에 따라 결정되며 지난 48년간 제빵 외길을 걸어온 최씨는 그 노하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최씨는 "대구 제과점이 대량 생산 체제의 메이커와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소량'전문화를 통한 특화밖에 없다"며 "훌륭한 후배들이 많이 나와 대구 제빵 명맥을 이어가길 간절히 바란다"고 미소지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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