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한 숲'깊은 계곡…사시사철 즐겨 찾는 곳
100여년 전만 해도 대구 도심엔 성곽이 있었다. 4대문과 2개의 작은 문, 그 중심엔 경상감영과 대구부가 자리했다. 경상감사의 집무소였던 선화당과 처소인 징청각, 정문 관풍루와 객사 및 군사시설. 뿐만 아니라 달성토성엔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황제가 심은 향나무가 있다. 모두가 소중한 문화유산들이지만 세월의 무게와 개발이라는 이유로 헐리거나 옮겨지고 있다. 이에 삶의 애환과 추억이 서린 문화적 역사적 정취가 묻어나는 장소들을 찾아 그 속에 묻혀 있는 많은 이야깃거리를 발굴하고 의미나 가치를 재조명해보고자 새해부터 '김종욱의 달구벌 이야기'를 연재한다. 김종욱씨는 고령 부군수를 지냈고 현재 수필가로 활동중이며 문화사랑방 허허재의 주인이다.
팔공산은 산세가 웅장하여 달구벌 사람들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다. 우람한 바위와 깊은 계곡, 울울창창한 숲, 그리고 절집들이 어울려 참 아름답다. 태백산맥에서 남서 방향으로 갈라져 나온 지맥이 방가산'화산'팔공산'도덕산으로 이어져 팔공산맥을 이룬다. 그 가운데 팔공산은 해발 1천193m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양쪽에 동봉과 서봉이 있다. 그 줄기는 칠곡군'군위군'영천시'경산시'구미시까지 뻗어 있고, 북쪽 비탈면에서 위천의 지류인 남천이 발원하고 있다. 또한 달구벌의 북쪽을 둘러싸고 있는 진산으로 중악'부악'공산'동수산으로 불렸다. 팔공산으로 불리게 된 데는 그럴 만한 연유가 있다. 고려 태조가 즉위한 뒤에도 한동안 후백제와 긴장 관계에 있었다. 결국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악화되어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팔공산에서 크게 접전을 벌였다. 첫 싸움은 동쪽 기슭 은해사 입구에서 벌어졌다. 치열한 전투 끝에 고려군은 크게 패하고 말았다. 후퇴한 왕건은 신숭겸이 이끄는 증원군과 합세하여 팔공산 남쪽 동수 입구, 지금의 지묘동 일대에서 다시 한번 접전을 벌였으나 결과는 전멸에 가까운 참패였다.
이와관련, 전해지는 이야기가 더 있다. 홀로 앉아서 잠시 쉬었다는 독좌암(獨座岩), 파군재 못 미쳐 왼쪽, 도주하다 이곳에 이르니 어른들은 모두 피난 가고 아이들만 남아 있었다는 불로동(不老洞), 겨우 위험을 피해 찌푸린 얼굴을 활짝 폈다는 해안(解顔), 날은 어두운데 중천에 떠 있는 달이 길을 비췄다는 반야월(半夜月),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는 안심(安心), 그리고 사흘을 숨어 지냈다는 대덕산 자락의 왕건굴과 은적사(隱迹寺)가 그때 붙여진 이름들이다.
팔공산은 갖가지 동'식물의 보고이기도 하다. 자료에 따르면 219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명아주'원추리'은난초'옥잠화 같은 690종의 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그야말로 자연 생태계의 보물 창고 같은 곳이라 하겠다.
팔공산은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즐겨 찾는 곳이다. 봄에는 꽃을 보는 즐거움으로, 여름에는 울울창창한 숲이 좋아서,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과 더불어 낭만에 잠기고 싶어서, 그리고 겨울산의 정취를 즐기고 싶어 산자락을 오르내린다. 그런 가운데서도 가장 큰 미덕은 여름에 그 빛을 발한다. 불기운이 강한 대구 분지의 지형적 특성으로 해서 한여름 더위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편히 쉴 수 있도록 해준다. 울울창창한 숲과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는 사람들로 붐비기 일쑤고, 더러는 천막을 마련하여 가족이 함께 잠을 자고 그 자리에서 출근을 하기도 한다. 또한 등산로가 많기로 소문이 나서 외지의 등산객들도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 가운데는 섣달 그믐날 저물 때 올라 정상에서 새해아침을 맞기도 한다. 그만큼 달구벌 사람들이 의지하고 싶어 하는 마음의 안식처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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