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매출 10조…"내년 업계 1위 달성"
이승한 삼성테스코홈플러스 회장은 올해 겹경사를 맞았다. 홈에버를 인수했고, 영국 여왕으로부터 훈장도 받고, 지난달에는 회장으로 승진했다. 홈플러스 대구 1호점을 시작으로 113개 점포, 9조원 매출을 올리는 그룹으로 성장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9년. 이 회장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늘 CEO다. "생각보다 세월이 빨리 흘렀구나 싶습니다. 그냥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10년이란 긴 시간이지만 홈플러스가 업계 12위에서 1위로 성장하는 데 걸린 10년은 짧았습니다."
이 회장은 내년 업계 1위를 기정사실화한다. 현재는 이마트의 점포가 몇개 더 많지만 홈플러스가 내년에 더 많은 점포를 개설할 예정이고, 점포당 매출액도 더 많다.
이 회장은 늘 일한다. 직원들에게 퇴근한다며 나가서는 비밀통로로 올라가 몰래 일하는 경우도 많다. 정작 자신은 "실컷 일한 게 아니라 창의적 게임을 즐겼다"고 한다. 10년 만에 10조 매출, 업계 1위를 향한 '게임'이었다. 큰 비전을 세우고 강한 팀워크로 열정과 에너지를 결합해가는 게임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이 회장은 집무실이 아니라 회사 인근 커피숍에서 인터뷰하자고 했다.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려는 일종의 배려다. 그리고 2시간 넘게 대화하는 가운데 세계 최초, 한국 최초란 말을 열번도 더 했다. 홈플러스 자체가 세계에 없는 새로운 형태의 업체로 새 역사를 쓰고 있으니 '최초'란 말이 자주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창고형 할인점을 원스톱 생활 서비스 개념을 도입해 지금의 할인점 형태로 창조한 사람도 이 회장이다. 3호점인 안산점부터 돈 되는 1층에 문화센터 어린이놀이터 음식점 미용실 클리닉 등 '돈 안 되는' 시설만 골라가며 잔뜩 집어넣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미친 사람이라고 했을 겁니다. 영국 본사에서도 무슨 저런 점포를 만드나 하고 걱정 많이 했어요. 하지만 고객들이 쉴 공간도 없고 불편해 죽겠다는데 장사 제대로 하려면 고객 요구에 맞춰야지요. 경영자가 저지르기 쉬운 오류가 자기 생각이 고객의 생각이라고 착각하는 겁니다. 지자체장이나 국가 지도자도 마찬가지지요."
이 회장의 작전은 대성공. 주변의 경쟁점 2곳 매출액의 1.5배가 됐다. 5호점이 들어서자 다른 할인점들도 놀라 모방했다. '한국형 할인점'이란 혁명이 시작된 것. "400개의 창고형 할인점이 전국에 가득하다고 생각해보세요. 끔찍한 일이죠. 경쟁업체들의 모방으로 블루오션이 레드오션이 되었지만 국민들이 즐겨 찾는 공간이 만들어졌으니 상관없어요."
이 회장의 승부는 계속된다. 바로 서울 잠실점이다. 잠실점은 롯데백화점 롯데호텔 롯데마트 롯데캐슬이 있는 롯데왕국 뒷골목에 만들었다. 골리앗을 잡기 위한 다윗의 도전인 셈이다. 도로 쪽 벽부터 없앴다. 1층에 커피숍과 베이커리카페를 넣었다. 80타석 골프 인도어와 와인을 싸게 사서 마실 수 있는 와인바도 넣었다. "젊은 연인들이 밤 11시가 돼도 바글거립니다. 눈 날리고 잔설이 앉은 나뭇가지를 보며 팝송과 재즈를 들으며 마시는 커피, 낭만이 있잖아요? 겨울에는 난로에다 담요까지 줍니다. 홈플러스 때문에 주변 아파트 값이 올랐어요."
지난달 문 연 경기도 부천 여월점은 또 다른 혁명이다. 그린스토어. 가로등은 소형 풍력 발전과 태양광 발전으로 전기를 공급한다. 옥상에는 태양광과 풍력 발전 설비를 설치했다. 유리창은 태양광 박막을 입혔다. 점포가 아니라 소형 발전소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조명도 LED로 교체하고 조도도 1천200룩스에서 900룩스로 낮췄다. 냉장고와 냉동고 문을 닫았다. 결과는 에너지 비용 40% 절감.
잠실점과 강동점은 자전거를 타고 가면 포인트를 적립해준다. 자전거 수리점도 있다. 전 점포에서 2차 포장을 하지 않으면 포인트를 적립해준다. 홈플러스가 벌이는 환경 운동이다.
홈에버 인수는 까르프 인수 실패의 아픔을 딛고 이룬 성과다. 영국에서 이 회장에게 'Never Give-Up'(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란 별명을 붙였다.
영국 CBE(커맨더) 훈장 수훈은 이 회장에게 큰 영광이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임관 한국종합기술원장에 이어 세번째다. "홈플러스는 영국의 해외 투자 가운데 가장 성공한 케이스로 평가합니다. 미국의 월마트, 프랑스의 까르푸를 이겼으니 영국 국가브랜드를 높였다는 자랑도 있고요. 상을 받아 기사단 멤버가 됐어요. 대사가 폼 나게 상도 주고, 대사 부인이 파티도 열어줬습니다."
이 회장은 눈에 보이는 것을 모조리 바꾸는 습관이 있다. 주된 대상은 건물과 여자다. "테헤란로 주변 건물의 절반 정도는 내 상상 속에서 재디자인됐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르네상스호텔인데 어떻게 하면 장사가 잘 안 될 수 있을까 궁리해 만든 호텔 같아요. 호텔 앞에 심어둔 소나무도 악몽입니다. 활엽수면 겨울에 양광이 호텔 속에 비칠 텐데… 제일모직 빌딩은 오피스 빌딩이 아니라 바스티유감옥 같아요. 예쁜 여성이 옷을 엉망으로 입고 다니는 것을 보면 답답해요. 그래서 내가 갈아 입히죠(웃음)."
이 회장에게는 어린이 같은 천진난만함이 있다. 초등학생용 탈무드를 읽으면서 "수준이 딱 맞아 나를 위해 쓴 책"이라고 유쾌하게 말하는 그 천진성이 바로 창의력의 원천일지도 모른다.
꿈은 미래학자다. 홈플러스를 세계 최고 회사로 만들고, 은퇴 후에도 영속적 기업이 되도록 후원할 생각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외고, 지도책을 사랑하는 이 회장은 서울대에서 강의도 하고, 창의서울포럼 회장으로서 서울시의 시정도 조언하는 등 사회 활동도 바삐 한다.
서울정치부장 jwchoi@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대세론' 역전 카드…국힘 "사전 투표 전 이준석과 단일화"
국힘 "75% 사수" 민주 "30% 돌파"…TK서 대선 승패 갈린다
민주당 압박에 '흔들리는 법원, 무너지는 검찰'…내부선 "스스로 지켜야" 목소리
이재명 당선되면?…"정치보복 나설 것" 53% "삼권분립 위협" 44%
대구과학관 내부 성범죄 묵인…'재워주겠다' 발언에 신체 접촉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