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영어, 정말 싫어한다"

입력 2008-10-21 06:00:00

"영어, 정말 싫어한다" 지난 10월 7일 올해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발표된 3명의 일본 출신 학자 중 한 사람인 마스카와 토시히데 교수에 관한 아사히신문 기사의 제목이다.

어릴 때부터 수학과 물리 성적은 뛰어났지만 영어 성적은 중간 이하였던 마스카와 교수는 대학원에 입학할 때는 외국어 시험을 면제받고 특례 입학했다. 올해 나이가 68세인데 외국에 가본 적이 없고, 여권도 없다. 해외의 강연이나 수상식에는 항상 공동연구자이자 공동수상자인 코바야시 교수를 보냈다. 오는 12월에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노벨상 수상식에 참석하게 되면 처음 외국에 나가는 것이 되는데, 기자가 참석하느냐고 묻자 "이번에는 어쩔 수 없겠지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영어를 정말 싫어하면서도 연구도 하고 교수도 되고 노벨상까지 받았다? 외국어로 된 주요한 책과 논문들은 곧바로 번역되어 제공되는 일본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온 국민이 영어에 몰입해야 한다고 난리를 부리는 나라, 심지어 한국어로 소설을 쓰는 자칭 '소설가'라는 사람이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해야 한다고 강변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마스카와 교수의 부인은 한술 더 뜬다. "남편이 공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집에는 서재가 없어서, 찻집에서 종이와 연필만 가지고 생각에 잠기는 일이 많았다. 시간을 정해 놓고 행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출근은 매일 아침 8시 2분, 목욕은 오후 9시 36분으로 정해놓고 한다." 자신의 세계 속에 깊이 빠져들어 살고 있는, 말하자면 '오타쿠'인 마스카와 교수의 전공은, 많은 돈이 드는 장비와 시설 없이 종이와 연필만 가지고도 연구할 수 있는 이론물리학이다. 그 분야에서 일본은 지금까지 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종이와 연필과 생각이 일본의 물리학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자산인 셈이다.

'수상의 기쁨'을 이야기해 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대해 마스카와 교수가 내놓은 대답은 "별로 기쁘지 않다"였다. 그 이유는 "물리학자로서 2002년, 2003년의 실험으로 내가 말한 것이 확립되었을 때 기뻤"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올해의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시모무라 교수도, 자신이 발견한 형광단백질이 널리 이용되면서 유명해졌지만, 처음 형광단백질을 발견했을 때는, "어쩌면 이토록 아름다운 색을 내는 것일까 라고 감탄했을 뿐, 어떻게 이용해보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라고 했다. 그저 묵묵히 '학자의 기쁨'을 추구하다 보니 노벨상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마스카와 교수는 공동수상자인 코바야시 교수와 함께 나고야대학 출신의 '순수 국내파'이다. 나고야대학에 진학하게 된 계기는, 고등학생 시절 집 근처의 나고야대학에 소립자물리학 분야에서 크게 활약하는 사카타 교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내가 살고 있는 나고야에서 과학이 만들어지고 있다니 참 놀랍다."라고 흥분에 빠졌던 일이라고 한다. 나고야는 인구 220만의 일본 중부권 중심도시로 일본에서의 위상이 대구와 비슷한 도시이다.

올해만 물리학상 3명에 화학상 1명이라고 하는 일본의 괄목할만한 성과에 접한 국내의 각계각층은 사뭇 호들갑을 떨고 있다. 대학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새삼 힘이 실린다. 그 대학들을 대표한다는 서울대의 총장은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해외 석학을 초빙"하는 "노벨상 프로젝트를 가동"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미 엄청난 국고를 쏟아부어 초빙한 '해외 석학'이라는 은퇴 직전의 영어권 학자들 사진으로 홈페이지를 도배하는 대학, 정작 주목하고 지원해야 할 조교들은 예비학자로서 보듬기는커녕 '일꾼'으로 부리다가 결국은 탈진시켜 외국으로 내모는 대학, 일본학 교수를 뽑으면서 영어로 공개강의를 시킬 정도로 영어에 몰입하는 '한국 최고의 대학'이야기이다.

마스카와 교수를 배출한 일본이 가리키는 방향은 다르다. '노벨상을 받고 싶은가? 자신의 언어로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자신의 방식대로 묵묵히 해나가는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도와주라. 그러다보면 노벨상도 받게 될 것이다.'

김창록(경북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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