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영어교육 열풍, 경제성 있나?

입력 2008-09-30 06:26:48

얼마 전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영어교육을 중시하는 이명박 정부에 일침을 가했다. 지난 8월 청주지검에서 '지속적 경제 성장과 교육의 역할'이란 주제로 특강을 하면서다. 그는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영어보다 우리말을 잘 읽고 쓸 줄 아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미래 지식기반사회에 필요한 인재가 지녀야 할 지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어이며, 국어를 잘해야 생각을 잘할 수 있고 나아가 이 생각들이 사고, 사상으로 이어지면서 우수한 문화를 꽃피운다"고 지적했다.

우리 국민의 교육열은 매우 뜨겁다. 이런 에너지가 보릿고개에 허덕이던 가난한 나라를 세계 10대 무역대국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더욱이 가속화되는 글로벌시대에 교육의 경쟁력, 특히 영어 교육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힘을 얻고 있다.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겠다는 이명박 정부는 취임 초기 영어 이외 다른 과목들도 영어로 수업을 하겠다는 '영어 몰입교육' 방침까지 밝혀(물론 비판이 제기되면서 한 발짝 물러섰지만) 전 국민을 영어열기에 녹아들게 만들었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 영어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해외 비즈니스, 국가 간 교류협력이나 통상협상, 국제학회 활동, 관광산업 등에서 영어는 긴요한 수단이다. 이런 탓에 많은 부모들은 우리말을 깨우치지도 못한 영유아들에게 영어를 주입시키고 있다. 우리말을 제대로 하느냐 못하느냐는 그 다음의 문제이다. 어린이집, 유치원은 물론 동네 태권도체육관까지 영어강좌가 있어야 원생을 모집할 수 있을 정도이다. 영어권 원어민강사 수요가 급증하면서 동네 학원가는 다문화사회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영어강좌 수가 대학 경쟁력의 평가 잣대나 되는 것처럼 대학들은 앞 다퉈 영어강좌를 개설하고 이를 홍보하고 있다.

영어교육에 이렇게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한쪽이 차면 한쪽이 기울게 마련인 것이 세상 이치다. 영어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교육의 불균형이 초래하게 마련이다. 영어를 더 공부하기 위해선 다른 과목을 포기하거나 책 읽는 시간을 줄이거나 없애야 한다. 아니면 잠자는 시간을 줄이든지.

과연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해야 국가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일까? 우리는 영어에 능통하다는 통상관료나 외교관들조차 중요한 협상을 할 때는 동시통역사의 도움을 받는 모습을 신문이나 TV에서 종종 보게 된다. 영어에 능통한 사람이 필요한 일은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다. 마카오의 카지노에 다녀 온 사람들은 그곳은 '영어로 대화하기 힘든 곳'이라며 당황했던 경험을 들려준다. 대부분 종업원들이 중국어를 쓰고, 일부 영어를 쓰는 직원들도 더듬거리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그곳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영어를 잘해야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하는 사례다.

우리는 사회에 진출해 쓸 기회가 별로 없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다른 소중한 것들을 포기하고 있지 않은지 모르겠다. 영어공부에 드는 엄청난 돈과 시간, 그리고 노력들을 생각할 때 영어의 기회비용은 경제학적으로 용인될 수 있을까? 오늘 문득 이런 말이 생각난다. '자원의 효율적 배분 및 적재적소 활용.'

김교영 사회1부 차장 kim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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