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의 필름통] 다시 보는 대부

입력 2008-09-27 06:00:00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1972년)만 생각하면 아버지가 떠오른다.

심부름을 보냈는데, 나는 그 돈으로 극장으로 뛰어갔다. 그때 약전 골목에 환약 조제비가 2~3천원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게 앞에서 조금 갈등하다가 냅다 극장으로 뛰어가 그 돈으로 "표 한 장 주세요"하고 말았다. 그때 본 것이 '대부2'(1974년)였다.

영화를 보고 집까지 걸어가면서도 머릿속에는 로버트 드 니로가 폐병에 걸린 아이를 두고 창가에서 갈등하는 얼굴이 떠나지를 않았다. 험한 이민자들의 삶, 가난하지만 아이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범죄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수 없는 돈 꼴레오네의 젊은 시절이었다.

집에 도착했어야 야단맞을 일이 걱정됐다. 그 돈으로 영화 보았다는 말도 못하고, 죽으란 듯이 호통을 감수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죄송스럽지만, 그때 가슴 속에 로버트 드 니로가 아버지였으면 하는 생각이 밀려들기도 했다.

'대부'가 영국 엠파이어 매거진의 설문조사에서 '사상 최고의 영화'로 선정됐다고 BBC인터넷판이 25일 보도했다. 1만 여명의 영화팬들과 150명의 할리우드 감독, 50명의 평론가가 참여한 가운데 역대 최고의 영화를 묻는 설문조사였다.

'대부'에 이어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이더스'(1981년)와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제국의 역습'(1980년), 팀 로빈스와 모건 프리먼의 '쇼생크 탈출'(1994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1975년)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나 또한 '대부'를 최고의 영화로 꼽고 있다.

'대부'만큼 자주 본 영화도 없다. 간혹 1편을 보다가 3편까지 연달아 밤을 새워 본 적도 몇 번 있을 정도다.

'대부'는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처음 볼 때는 고급스런 갱 영화로만 보였다. 암흑가의 암투와 섬뜩한 살인, 보복과 응전으로 치닫는 어둠의 세계만 그려진 갱스터였다. 그런데 다시 보면 계급투쟁과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권력구조가 보였다. 또 갈등과 반목으로 이어진 미국 현대사가 담겨져 있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외연을 넘어서니 서서히 스크린 곳곳에 배인 가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부'라는 제목 자체가 이미 패밀리를 담고 있다. 세상이, 친부(親父)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야생에서 맺어진 대부이다.

자식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돈 꼴레오네(말론 바란도), 여동생을 보호해주기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소니(제임스 칸), 내키지 않지만 아버지의 뒤를 잇는 마이클(알 파치노), 꼴네오네 가문을 위해 헌신하는 양자 톰(로버트 듀발), 그리고 '대부'를 믿고 따르는 수많은 이탈리아 이민자들... . 그들은 모두 패밀리라는 이름 아래 모인 연대이다.

명작을 대할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는 것은 그 속에 자신이 투영되기 때문이다. 느낌의 흐름에는 자신의 연대기가 숨어 있는 셈이다.

올 가을 '대부' 시리즈 3편을 밤을 꼬박 새워 보는 이벤트를 기획하고 지인들에게 알렸다. 2008년 가을 '대부'는 나에게 어떤 느낌을 줄까. 벌써부터 설렌다.

김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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