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는다는 옛말이 맞다. 중국인들 사이에는 분명 혐한증이 존재한다. 달이 그러하듯 때에 따라 그믐처럼 보이지 않을 때도 있고 보름처럼 속속들이 드러날 때도 있지만 실체는 변함이 없다. 더군다나 그 내용들도 제법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혐한증이 싹 튼 것은 '강릉단오제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신청'이 계기가 되었다. 이어 동북공정문제와 백두산영유권문제라는 가지가 자라났고, 여기에 각종 사족과 유언비어가 첨부되어 울창한 숲이 된 것이다.
혐한증의 성장을 배가 시킨 중요한 환경요인도 있다. 먼저 한국정부의 정책지향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일본 쪽으로 과도한 편향을 보인 데 대한 불만이다. 한미무역에서 한국의 적자상황을 고려하면 중국이 더 나은 파트너인 데도 미국과의 FTA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한국언론의 보도행태이다. 스촨대지진을 '천벌'이라고 한 일간지, 쉬쉬하던 올림픽개막식 장면을 미리 방영해버린 방송사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다. 거기에 공교롭게도(?)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이 너무나 선전해버린 것이다.
혐한증을 부풀리고 확산속도를 증폭시킨 또 하나의 중요한 책임주체는 일간지와 인터넷이다. 민감하게 진행되는 공방전 와중에서 흥밋거리로 삽입된 잡지, 일간지의 기사들이 각색되어 중국 인터넷상에 공론화된 것이다. '혐한, 반한정서가 인터넷을 통해 빠른 속도로 중국에 확산되고 있다. 십대에서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들 가운데 68%가 반한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점차 사회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한국 일간지의 기사의 내용은 곧바로 중국 인터넷에 유포되었고, 반한감정을 모르던 중국인들까지 한국인들의 반중(反中)정서를 이야기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아직 혐한증의 내용이 사이버공간의 논쟁거리로 한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만나는 중국인에게 혐한증이나 반한감정에 대해 물어보면 오히려 그런 게 있냐고 반문한다. 그 중 몇 사람은 QQ에서 혐한증에 관한 글을 본 적이 있지만 그것 때문에 혐한증이나 반한감정을 가지게 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여전히 중국인은 반한(反韓)보다 한국을 좋아하는(喜韓) 쪽이 주류이고, 한국드라마, 한국제품, 한국 미용실을 선호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중국인들은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한 사실은 있어도 한국상품 불매운동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 역시 반한감정으로 인해 영향을 받았다는 보도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변명하기를, 인터넷상에 유포된 반한정서를 자극하는 문장 대부분은 중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아이들이 쓴 미숙한 글에 소위 '애국인사'들의 첨언이 덧붙여진 것이라고 일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혐한증, 반한감정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성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이다. 촛불집회처럼 한국정책결정체계의 투입구조를 자극할 정도로 커질 때까지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미 한중 간에는 공유하고 있는 이익이 너무나 방대하며, 앞으로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질 건 따지고 알 것은 알아야 한다. 인구에 회자되는 내용의 진위를 구분하여 오해는 오해대로 사실은 사실대로 정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동북공정, 역사문제 등은 감정싸움의 차원이 아니라 학문적·외교적 차원에서 연구되어야 한다. 단오절과 같은 문화주권문제의 경우는 양국이 서로의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 음력 5월 5일을 단오라고 하는 것은 한국과 중국이 동일하지만 굴원을 기념하는 중국의 단오절과 한국의 강릉단오제는 다르다. 각각 특색있는 세시풍속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신청 할 수 있다. 중국도 중국 나름의 관습과 풍속이 있다. 공유할 수 있는 이익, 분할할 수 있는 이익, 구분해야 되는 이익을 구별하여 접근해야 한다.
최근 중국 내 반한감정이 수그러들고 있다 한다. 한국 언론들이 중국에 대한 기사를 긍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국 인터넷 접속자들의 감정을 누그러뜨렸기 때문이란다. 남의 말 좋게 하는 것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라는 것은 개인이나 국가나 마찬가지이다.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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