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서는 드문 '기립 박수'…뮤지컬 '캣츠' 리뷰

입력 2008-09-09 06:00:00

'메모리' 한국어로 부르자 관객들 '함성'

'캣츠' 대구공연이 열린 5일 오후 8시 대구시민회관. 무대 바로 앞 플로어에도 관객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객석을 무대 코앞까지 바싹 당겨 무대와 객석의 구분을 없앤 것이다. 고양이들을 무대에 가두는 대신 객석으로 뛰어다니도록 하겠다는 연출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공연장인 대구시민회관의 특성을 살린 연출인 셈이다.

쓰레기더미 안에서 고양이가 한 마리씩 기어 나온다. 고양이들은 저마다 솜씨를 발휘하며 관객의 오감을 잡아당긴다. 슬라이딩하는 고양이, 줄을 타는 고양이, 미동 없이 앉아 이 모든 상황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고양이….

단순해서 무미건조해보이기까지 하던 무대장치는 고양이들의 훌륭한 놀이터가 된다. 형형색색의 고양이들은 뛰어난 배우이자 훌륭한 무대장치 역할까지 했다. 세계적인 고양이 스토리는 그렇게 시작됐다.

무대양쪽에 HK 오디오 코헤런트 스피커가 줄에 매달려 있다. 오디오장치는 거미줄처럼 펼쳐진 조명등과 조화를 이루었다. 리어 스피커에서 나오는 오토바이 소리나 쓰레기 소음은 소리를 넘어 관객에게 시각적 입체감을 부여한다. 찢어질 듯한 소음들과 조명은 객석에 앉은 관객을 단번에 고양이의 땅 젤리클로 인도한다.

대구 첫 공연인 탓일 것이다. 배우들의 긴장감이 역력했다. 1막에서 주인공 '그리자벨라'는 박자를 한번 놓치기도 했다. 객석에서 어슬렁거리던 고양이는 무대를 재빠르게 가로지르면서 넘어지기도 하였다. 아마 멍이 들거나 다쳤을 것이 분명하다.

이번 대구시민회관 '캣츠' 공연은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다른 공연장에 비해 무척 적다. 그래서 고양이들은 다른 공연장에서보다 더 자주 객석을 돌아다녔다. 어두운 객석에는 고양이의 진로를 인도하는 조명등이 없다. 그래서 배우들은 진짜 고양이처럼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객석에서는 갑자기 자기 옆에 나타난 고양이를 잡으려고 손을 뻗는 관객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고양이들은 화들짝 놀란 듯 움찔하며 몸을 피한다. 진짜 고양이의 행동양식 그대로다.

이번 대구시민회관 '캣츠' 공연은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테마곡을 한국어로 부르는 장면이 있다는 것. 선지자 고양이인 올드 듀터로노미 역에 한국인 배우(임한성)가 캐스팅되었다는 점이다. 한국어로 '메모리'를 부를 때 관객들은 많은 박수를 보냈다.

젤리클 최고의 인기 수컷 고양이이며 반항아인 럼 텀 터거는 정확한 음정과 탁월한 가창력을 자랑했다. 그의 연기는 안정적이고 정확했다. 해외에서 보았던 '캣츠' 공연의 배우보다 더 뛰어나다고 평가하는 관객도 있었다.

누가 뭐래도 뮤지컬 '캣츠'의 주인공은 '그리자벨라'이다. 옛날에 가장 아름다웠던 '그리자벨라'는 더 화려한 삶을 꿈꾸며 바깥세상으로 나갔다가 늙은 몸, 상처 입은 영혼으로 젤리클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번 '캣츠' 대구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인 고양이는 나이 많은 극장 고양이 '거스'였다. '거스'는 젊은 시절 유명한 배우로 화려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중풍을 앓아 손을 떠는 노쇠한 고양이다. 그러나 그는 과거를 담담하게 회상하며, 현재의 늙고 병든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늙고 쇠약한 고양이 '거스'의 삶에 대한 관조적인 태도는 '그리자벨라'의 회한과 대조를 이루며 선명한 감동을 준다. '거스'의 모습은 렘브란트가 말년에 그린 자화상을 생각나게 했다. 둘의 외모가 아니라 풍기는 이미지가 잘 통한다는 느낌이었다.

'캣츠' 공연에는 '고양이는 개가 아니다'는 메시지가 반복해서 전달된다. 꼬리를 흔들며 쉽게 친밀감을 드러내는 개와 달리 고양이는 관계에서 쿨하고 경계심이 많아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다. 사람들 중에도 이른바 '독피플'과 '캣피플'이 존재하며, 두 사람은 분명히 다르다. 개를 아끼는 사람들은 기분이 상할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캣츠'에서 '고양이는 개와 다르다'는 메시지는 옳거나 그름에 관한 문제는 아니다. 뮤지컬 '캣츠'는 존재자는 누구나 서로 다른 특성이 있으며, 예의를 갖고 이 특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공연이 끝났을 때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사실 대구에서 열리는 공연에서 기립박수는 드물다. '캣츠'가 아니라 어떤 공연일지라도 그렇다. 감동과 즐거움이 어우러진 기립박수 속에 고양이들은 인사했다. 공연이 끝나고 밖에서 만난 관객들은 아직도 상기된 얼굴이었다.

▶캣츠 대구공연안내=~21일까지/평일 오후 8시, 토요일 오후 3시, 일요일 및 공휴일 오후 2시, 7시(9·10일 오후 3시 공연 있음, 14일 추석당일 오후 7시 공연 1회, 월요일 공연 없음)/대구시민회관/러닝타임 2시간 40분(인터미션 포함)/파워엔터테인먼트㈜ 053)762-0000.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