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문헌 등 유교전통 잘 간직/이론 체계화 등 기초작업 필요
대구의 미래 비전을 설정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섬유도시' '선비의 고장' '문화예술과학도시' '글로벌 지식경제자유도시'를 거쳐 최근에는 '교육학술도시'에 관한 논의가 나왔다. 이러한 시도는 대구 발전을 위한 다양한 모색의 과정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교육학술도시'는 '선비의 고장'과 통하는 점이 있으며, 조동일 교수의 '학문수도'로서 대구를 발전시키자는 제안과도 연결된다.
최근 대구경북연구원은 '대구경북 교육학술 중심도시 조성'을 위한 포럼을 마련해 정부의 정책 방향과 대구의 미래를 위한 토론마당을 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구체적 추진 방안으로 국제교육타운, 컨벤션타운, 뉴 영타운 등과 같은 교육학술 비즈니스벨트 조성 방안 등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국가나 한 도시의 중요 정책 수립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나아가 그 정책을 실천하는 일은 더욱 만만치 않은 과제이다.
정책 수립의 책임을 맡은 기관이나 지도자는 수립하고자 하는 정책이 그 지역의 역사적 배경에 바탕을 둔 것인지, 현실적 상황과 조건에 비추어 얼마나 실현 가능한지, 미래의 삶을 열어가는 데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지를 깊이 살펴야 한다. 교육학술도시로서 대구의 역사적 전통과 토대를 확인하고 재해석하여 그것을 당면 정책의 이론적 근거로 삼아야 한다. 이렇게 마련한 근거는 국회와 중앙 정부를 설득하는 논리가 되고, 지역 시민들이 이 정책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도록 함으로써 정책 추진의 힘이 된다. 대구경북이 왜 교육학술도시가 되어야 하는지 합리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구체적 실천 방안을 마련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구경북이 교육과 학술 면에서 과거에 어떤 역할을 해 왔고, 이것을 토대로 미래로 나아갈 방향을 보여 주어야 한다. 과거의 축적된 자산을 바탕으로 미래의 비전과 실현 가능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그 정책은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정책은 반드시 지역 시민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다. '밀라노 프로젝트'가 어떻게 사라져 갔는지, '컬러풀 대구'가 아직도 대구 시민의 가슴에 와 닿지 않는 까닭을 심사숙고해 보아야 한다.
그런데 교육학술도시라는 비전은 대구경북 사람들이 공감대를 가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신라 천년의 문화유산, 유학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수많은 서원과 문헌, 그리고 튼튼한 역량을 갖춘 대학들이 대구경북에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시대를 거쳐 형성된 영남의 선비정신이 지금도 이 지역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역사적 전통을 재확인하고 그 의미를 체계적으로 이론화하는 작업이 '교육학술도시' 정책을 잡는 데 기초가 되어야 한다.
'교육학술도시'로서의 역사적 전통성 혹은 정체성을 확보하는 작업은 좀 더 세부적 차원에서 진행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조선시대는 물론 20세기까지 활발한 출판과 교육사업을 통해 대구경북 지역이 축적해 온 전통적 역량을 오늘날의 현실에 재창출해 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하나의 작은 예를 들어 보겠다. 1940년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은 일제 암흑기 속에서 책으로 출판되지 못하였다. 해방이 되자 1946년 4월에 대구시 동성로 3가 108번지에서 창란각이라는 출판사를 경영하던 李靑(이청)이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을 합해 전국 최초로 '합부 훈민정음'이라는 책을 간행하였다. 필자는 이 주소지를 찾아가 현장 확인을 해 보았다. 그곳에는 낡은 건물을 보수해 영업 중인 컴퓨터 게임방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동성로 축제 등을 통해 동성로를 명물로 만들려는 행사가 해마다 계속되고 있다. 짧은 기간의 행사만으로 충분치 않다. 언제든지 느낄 수 있는 역사적, 문화적 향기가 그곳에 있어야 한다. 이청의 창란각 자리에 소규모의 대구교육자료관 혹은 대구출판역사관을 지어 동성로에 나온 사람들이 한번쯤 들어가 이곳의 역사와 전통을 느끼도록 해 볼 일이다. "문제는 돈이야"라고 말하겠지만 과연 돈 때문에 이런 일이 안 되는 걸까?
백두현(경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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