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르네상스] ③전남 장흥5일장의 혁명
전남 장흥. 모든 농어촌지역이 그러하지만 이곳은 14만명에 이르던 상주인구가 4만명으로 줄었다.
인구가 줄면서 경제시계도 멎어갔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상권, 즉 이 지역 재래시장이었다. 장흥읍내 탐진강변에 있던 장흥읍 5일장터도 그랬다. 장흥의 인구가 급감하자 이 시장은 급속히 쇠락했다.
하지만 이 시골장터에 '혁명'이 일어났다. 군수가 직접 나서 "시장을 살려보자"고 했고 군청 공무원, 상인들이 머리를 맞댔다. 2003년 무렵이었다.
시골장터는 동네 사람들에게만 기대 살 수 없다는 결론을 먼저 도출해냈다. 2003년 당시 때마침 본격화한 주5일 근무제. 이 시장은 "주말 도시민들을 잡아야 한다"며 시장 구조를 바꿨다. 결과는 대성공. 매출이 270%나 늘어난 가게까지 생겨났고 모든 가게가 평균 30% 이상 매출이 증가했다.
◆사고, 먹고, 놀고, 쉬고, 보고
이 시장은 주5일제로 자유를 얻은 사람들의 욕구에 부응하는 '관광형 시장'이 살길이라고 생각했다. 장흥군청의 주도로 국비 40억원을 확보, 모두 73억원을 넣어 아케이드를 설치하는 등 새 단장을 했다. 1960년대 지어진 재래식 건물도 말끔한 새 건물로 바꾸었다. 사람이 지나가기에도 비좁았던 통로도 뻥하고 뚫었다. 2005년 여름, 이렇게 시장은 새 얼굴로 태어났다.
토요일 도시민들을 노렸으니 이름도 '토요시장'으로 내걸었다. 독특한 인상을 주기 위해 서울에서 정남쪽이라는 뜻의 '정남진'도 갖다 붙였다. '정남진 장흥 토요시장'. 장흥읍내 5일장은 이렇게 창씨개명까지 했다.
다음 단계는 '무엇을 주력 상품으로 할 것인가'였다. 장흥은 전국 낙지의 40%를 생산하는 낙지의 고장. 하지만 수산물은 철 따라 들쭉날쭉했다.
과감하게 주력 상품을 한우로 바꿨다. 3만7천두의 소가 사육되는 장흥. 전국에서 쇠고기를 가장 값싸게 살 수 있다는 광고를 내걸었다.
상설 무대를 만들어 매주 공연도 열었다. 바로 앞에 흐르는 강을 활용해 맨손으로 물고기 잡기 대회 등 가족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도 열었다. 사고, 먹고, 놀고, 쉬고, 보고, 재미있는 일로 가득 찬 장흥 토요시장이라는 것.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몰려왔다. 주말에는 자동차가 주변 주차장까지 꽉 메웠다. 전국 재래시장 평균 매출 감소폭이 30%라는데 이 시장은 오히려 30%가 늘었다.
◆안 되면 되게 하라
아케이드를 설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시장의 대대적 개조작업. 이 작은 시골 마을 상인들 대다수는 처음 '왜 이런 엄청난 일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공사기간 중 장사를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하자' '하지 말자' 패가 갈려 주먹다짐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해관계가 얽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상인들끼리 유대관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상인대학을 열어 모여서, 함께 배우고 익히며 서로를 알아갔다.
시장 내부에 상인들을 위한 공간도 만들었다. 체력단련장과 회의실까지 갖췄다. 예전엔 가족들을 시장에 데려오기 부끄러워했다. 형편없는 시장. 하지만 시장이 바뀌고 상인들을 위한 시설까지 만들어지자 시장 상인들도 자긍심을 갖기 시작했고 시장을 바꾸는 일에 무엇이든 협조했다.
인정에만 얽매이는 시장 운영방식도 과감히 버렸다.
한우가 주력인 만큼 6개월에 한번씩 한우가 맞는지를 판단하는 DNA검사를 한다. 이 검사에서 한우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면 1천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시장 상인들은 누구 하나 반기를 들지 않는다. 당장의 이윤에 눈이 어두워 거짓 판매를 해서는 모두가 망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토요일, 이벤트가 열렸는데 비가 오면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뜬다. 하지만 이벤트는 중단되지 않는다. 단 1명의 관객이 있더라도 정해진 이벤트는 반드시 진행한다는 철칙을 이 시장은 세워놓고 있다.
겨울 비수기가 두려웠지만 석화구이를 준비해 따뜻한 고기를 즐겁게 먹을 수 있는 분위기를 유도, 겨울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정남진 장흥 토요시장의 성공 비결
▷현대식 아케이드와 정겨운 시골 장터의 결합
신축 건물 중앙부에 돔형 광장을 설치해 시장 분위기를 밝고 깔끔하게 만들었다. 배수가 쉬운 재료를 이용한 바닥 공사로 생선가게가 많은 시장이라는 점을 충분히 고려했다.
▷무료 이용 가능한 넓은 주차장
외지인이 많은 토요시장의 특성상 주차 문제 해결은 필수. 인근 탐진강 둔치에 무료 주차장을 마련했다.
▷볼거리 풍성한 다양한 무대 행사
간이무대에서 가수들 공연과 엿장수, 각설이타령, 마술쇼 등을 하루종일 펼친다. 짚공예 시연 판매장에서는 읍면 경로당별로 기능을 가진 노인들이 번갈아 나와 짚신과 짚방석, 소쿠리, 꽃병을 만들어 선보인다.
▷지역 특산물과 한우 싼 가격에 제공
헛개나무, 표고버섯, 키조개, 매생이 등의 특산물과 한우를 시중가격보다 30% 이상 싸게 판다. 한우는 한우판매장에서 고기를 산 뒤 인근 식당에서 구워먹을 수 있다.
▨ "저희도 깜짝 놀랐습니다" 장흥 토요시장 김유성 사무국장
"제 자신을 포함해 시장 사람들 대다수가 이 정도로 성공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저희도 깜짝 놀랐습니다."
정남진 장흥 토요시장 김유성 사무국장은 시장을 바꾸는 작업을 주도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지만 이제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시너 사건 등 온갖 갈등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고비를 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상인들도 열심히 노력했지만 군청 공무원들이 앞장서 이끌어준 점을 참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는 이제 일단 첫 고비는 넘었으니 시장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제부터가 다시 시작입니다. 자만하면 무너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품질관리를 강화하고 서비스 개선에 나서야 합니다. 최근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과 협약을 맺고 정말 제대로 된 수산물을 팝니다. 공인된 기관이 검증을 한다는 것이지요. 한우는 이미 DNA검사를 하고 있습니다."
김 국장은 할 일이 너무 많아 셀 수도 없을 지경이라고 했다. 변화하는 노력을 게을리하는 순간, 손님은 떠난다는 것이다.
"시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저변을 더욱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쇠고기를 구워먹는 것으로는 안됩니다. 어린 아이들은 구워 먹는 고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우 떡갈비, 한우 버거 등 아이들 입맛에 맞는 메뉴도 개발해내야 합니다."
그는 시장의 이미지도 중요하다고 했다.
"한우장학회를 만들겁니다. 한우로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데 한우를 내세워 무언가 좋은일도 해야죠. 이 지역엔 다문화가정도 많습니다. 16개 국가 230여명이 있습니다. 이들이 성공적으로 우리 가정에 정착할 수 있도록 이들을 돕는 이벤트도 진행할 겁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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