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과장은 지역 중견업체 품질관리 과장이다. 실직 남편을 대신해 집안 경제를 책임진 실질적 가장으로, 평소 자기 일에 당당히 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늦은 저녁 우연히 함께 한 술자리에서 "일이 재미있느냐"고 묻는 나에게 "남편이 취직만 하게 된다면 하루라도 빨리 이 일을 때려치우고 싶다"고 의외의 속내를 비추었다. 그러고 보니 평상시 말이 없고 늘 표정이 경직돼 있던 그녀였다.
이유인즉슨, 말이 좋아 품질관리부 과장이지 자신의 역할이 불량을 납품한 데 대한 사죄를 전담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하소연이었다. 즉 자사 생산현장이 불량을 내면 하청을 준 대기업 담당자는 득달같이 전화해 거친 말을 쏟아내고 하루가 멀다 하고 수도권으로 불러올리기 일쑤라는 것이었다. 반나절 거리를 운전해서 수없이 머리를 조아리다 저녁에 돌아오면 온몸의 진이 다 빠진다는 거였다. 생산책임자에게 고객의 요구사항을 전하고 불량 발생에 대한 원인을 캐물어도 그때뿐 언제 그랬느냐는 듯 금방 또 재발이라 그녀에겐 매일 매일이 살얼음판이요, 출근하기가 도살장 끌려가는 소의 심정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대부분 제조업체의 사정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불량제품 만드는 사람 따로 있고 이를 해결(?)하러 다니는 사람 따로 있으니 생산현장이 무감각증에 빠져 불량을 재생산하는 것은 당연지사. 몇백 개 중 몇 개의 불량은 괜찮다는 식이고, 설사 내가 불량을 내더라도 매를 대신 맞아 줄 품질관리 담당자가 따로 있기에 아쉬울 게 없는 구조인 것이다.
불량률 제로에 근접하는 '개선 중독자' 도요타자동차의 이에 대한 해결책은? "과감히 품질관리부서를 없애라!"이다. 실제 1980년 이후 도요타자동차와 그 협력업체는 품질관리부서와 품질검사 자체를 없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요타는 물론이고 70%가 넘는 협력기업이 품질 2ppm수준(100만 개 중 2개 정도의 불량)을 유지하고 있다. 나머지 2개의 불량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곤란에 빠지지 않으면 지혜는 없다'(불량은 발생시킨 사람이 책임을 진다)는 자세로 '알려면 철저히 알아서'(5 why 방법으로 불량 발생의 근본 원인을 밝혀 즉시 개선하고), '다시는 실수가 원위치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만든다'(누구나 알기 쉽게 표준과 시스템을 정해 실수를 방지하며, 그래도 시스템이 유지되지 않으면 책임지는 자를 명확히 정해 책임지게 한다)는 것이다.
A과장의 사례에서 보듯 우리 중소기업의 갈 길은 아직 멀다. '이 정도쯤이야'가 빚어낸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1995년 삼풍백화점 대참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완전'을 추구한 우수한 기술은 우리 조상들의 것이었다. 성덕대왕신종을 보자. 통일신라시대 제작된 이 종을 현 위치인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길 당시 종의 용뉴(종을 매다는 고리)를 조사한 독일학자는 무게 20여 톤을 지탱하는 우리 조상의 완벽한 鍛造(단조) 기술력에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곤고구미(金剛組)는 또 어떠한가. 곤고구미는 백제인이 일본 땅에 세운 세계 最古(최고)의 건축회사로, 1천400년을 이어 고대 백제의 건축기술을 유지 발전시켜 오고 있다. '곤고구미가 흔들리면 일본 열도가 흔들린다'는 말을 들을 정도의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기술력이 탁월했음에도 오늘날 이를 계승 발전시키기에 우리는 너무도 무심하고 인색하지 않았는가? 일본이 우리 기술을 1천400년 동안이나 이어 올 즈음, 우리는 그들이 파 놓은 사대주의, 열등감에 매몰돼 있지는 않았던가? 1960, 70년대식 '빨리빨리' 개발논리를 아직도 이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올림픽 열기로 전국이 뜨거운 요즘, 우리 민족의 저력을 새삼 느끼면서 '2050년 세계경제 2위 대한민국'이라는 골드만삭스의 전망이 현실이 되게 하려면 '불량 제로'를 추구했던 우리 조상들의 정신과 기술력을 오늘날 기업현장에 되살릴 방법부터 찾아야 하지 않을까?
양현주(경영지도사·영남이공대 겸임교수)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