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기량을 발휘할 젊은 선수들 틈에서 전성기를 훌쩍 지났을 나이의 '엄마'들이 베이징을 놀라게 하고 있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는 엄마들이 메달 경쟁에서도 그 위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 체조는 10대들의 전유물. 하지만 독일의 옥산나 추소비티나(33)는 17일 열린 여자 체조 뜀틀 경기 결승에서 1, 2차 시기 합계 15.575점을 기록, 북한에 두 번째 금메달을 안긴 홍은정(19·15.650점)에게는 뒤졌으나 세계선수권 뜀틀 3연패의 강호 청페이(중국·15.562점)를 제치고 당당히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 대회 여자 체조 선수 중 최고령임에도 나이가 믿기지 않은 탄력을 선보였다.
추소비티나는 세 나라 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해 더욱 눈에 띈다. 소련이 해체된 뒤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때는 독립국가연합 소속, 1996·2000·2004년 올림픽 때는 독립된 조국 우즈베키스탄 대표였다. 독일 선수로 이번 대회에 나선 그는 "33세가 아니라 여전히 18세라 느낀다. 2012년 때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뛸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독일 국기를 달고 뛴 사연은 애절하다. 아들 알리샤의 백혈병을 치료하기 위해 독일로 이주했고 치료비 마련을 위해 현역으로 계속 남은 끝에 퇴색되지 않은 기량을 인정받아 올림픽에 출전해서다. 경기 후 "이 메달은 아들을 위한 것"이라고 소감을 밝힐 때, 아들의 건강에 대해 "다른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할 수 있다. 이제 내 마음은 더 이상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진한 모성애가 느껴졌다.
11일 한국의 남현희를 극적으로 누르고 펜싱 플뢰레에서 3연패를 달성한 발렌티나 베잘리(34·이탈리아)도 우승 후 "엄마를 기다릴 세 살배기 아들 피에트로에게 가장 먼저 고맙단 말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메달 색깔은 아직 구분할 줄 모르는 것 같지만 따 오라던 메달을 가져다 줄 수 있게 돼 행복하다"는 베잘리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시지 않았다.
일본의 '유도 여왕' 다니 료코(32)도 동메달을 획득한 뒤 "두 살짜리 아들에게 금메달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젠 아들을 돌보고 싶다"고 말했고 유도 52kg급에서 금메달을 건진 중국의 샨동메이(32)도 생후 7개월 된 딸을 둔 엄마다. 아줌마가 많은 한국 여자 핸드볼의 대들보 오성옥(36)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지만 잘 커준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위해서라도 꼭 금메달을 따야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베이징에서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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