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일 태극기 안달면?…처벌조항 없지만 의무 저버려

입력 2008-08-16 06:00:52

7월 17일 제헌절 때 태극기를 게양한 가정들이 크게 줄었다. 올해부터 제헌절이 공휴일에서 제외되면서 생긴 풍경. 그러나 제헌절은 엄연히 국경일이고, 태극기를 게양해야 하는 날이다. 태극기 게양과 국기에 대한 맹세 등과 관련한 법률적 근거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태극기에 관한 규정은 지난해 1월 26일 제정된 '대한민국국기법'에 근거하고 있다. 국기법 제8조에는 국경일에 태극기를 게양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물론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는다고 해서 처벌 조항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국민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의무로 보는 것이다.

지난해 내용 일부 개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던 '국기에 대한 맹세'도 국기법 시행령에 명시돼 있다. 제4조 '국기에 대한 맹세'를 살펴보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때에는 다음의 맹세문을 낭송하되, 애국가를 연주하는 경우에는 낭송하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맹세문 내용은 이렇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거의 대부분 국민의례에서 애국가가 연주되기 때문에 바뀐 맹세문을 들을 기회는 거의 없다. 아울러 학교에서 외우라고 강요하지도 않아 더욱 접할 기회가 줄어들었다.

대부분 기성세대는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는 맹세문을 기억하고 있다. 지난 1972년 이후 35년간 유지된 내용이다. 하지만 이 내용도 원본은 아니다. 지난 1968년 당시 충남도교육청 장학계장이었던 유종선씨가 맹세문 초본을 만들었고, 이후 충남지역 학교에서만 시행되던 맹세문은 박정희 정권이 유신체제를 시작하던 1972년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 과정에서 내용이 바뀌었다. 최초 맹세문은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해 정의와 진실로써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라는 내용이었지만 이후 통일, 정의, 진실 등의 개념이 사라진 채 조국과 민족이 등장했고 '몸과 마음을 바쳐'라는 내용이 추가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후 맹세문은 절대적인 충성을 국민들에게 무의식적으로 가르치는 것이고, 자칫 군부정권 등 권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것으로 변질되기 쉽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결국 지난해 7월 정부는 새로운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규정한 대한민국 국기법 시행령을 제정·공포했다. 기존 맹세문 중 '자랑스런'은 어문법에 맞지 않아 '자랑스러운'으로 수정됐으며, '몸과 마음을 바쳐'라는 문구는 개인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의미를 담고 있어 삭제됐다. 하지만 맹세문 자체를 없애라는 요구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전국 90여개 인권·사회단체로 구성된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를 반대하는 인권·사회단체'는 맹세문 수정이 아니라 폐지를 요구했다. 지난 2003년 5월 개혁국민정당 유시민 의원이 "국기에 대한 맹세는 파시즘과 일제 잔재라고 생각한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애국은 내면적 가치인데 주권자로 하여금 공개 장소에서 국가 상징물에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게 하는 것은 민주공화국에서 상상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수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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