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게 없지요"
일상이 무료하고 권태로울 때는 시장을 찾으라는 말이 있다. 폭염과 열대야로 인해 가뜩이나 심신이 젖은 솜처럼 축 늘어질 때면 치열한 생활전선이 고스란히 전개되는 재래식 시장을 찾아 새로운 활력소를 얻는 것 또한 더위를 이겨내는 지혜일 수 있다.
대구 북구 칠성동 칠성시장. 서문시장과 더불어 대구의 양대 재래식 시장이다. 재래시장이라고 해도 예전처럼 길게 늘어선 저잣거리에 상인들이 줄지어 손님을 맞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 요즘엔 재래시장에 현대화 바람이 불면서 중앙 집약적인 대형건물 안에서 일정한 넓이를 점유한 부스형태의 가게들이 올망졸망 들어서 있는 게 보편화됐다. 칠성시장도 지난해 4월 리모델링을 마치고 지금의 모양새를 갖췄다.
비록 이전의 재래시장처럼 사람들끼리 부닥치며 물건을 사고파는 정겨운 풍경은 덜해도 잘 구획된 가게들 사이 통로로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흐느적흐느적 걸어보는 것도 색다른 도심의 정취로 다가온다.
우선 시장건물 안에 들기 전 따가운 뙤약볕은 길가의 차양막이 가려주고 있다. 그래도 도심 아스팔트 열기에 상인들은 웃통을 벗은 채 여름 한 낮 오후의 고객을 기다리고 있다. 난전에서 과일을 파는 아주머니가 늦은 점심을 들고 있는 가운데 옆 채소가게에선 상인과 알뜰 주부사이에 흥정이 오간다.
"사가 가이소. 열무 한 단에 3천500원 아잉교." "3천원 어떵교?" "아이고 아지매. 아직 맞수도 못했심더. 그라믄 3천200원에 가져 가이소." 흥정이 벌어지는 사이 저 앞 민물가게 앞. 요동치는 미꾸라지들이 무게를 달기 위해 채에 올려지고 있었다. 그 옆 물이 찰랑거리는 대형 고무 통 안엔 어른 팔뚝만한 가물치 서너 마리가 더위에 지쳤는지 꿈쩍도 않는다. 좀체 보기 힘든 자라는 눈만 끔벅거린다. 냉장시설이 잘된 정육점 앞에선 중년의 남성이 쇠고기 원산지를 묻고 있다.
시야를 넓게 둘러보니 없는 게 없는 곳이 또한 시장이다. 각종 양념재료에서부터 고기를 저미는 육절기까지. 식료품 가게 안엔 높다란 천장까지 쌓인 물건들을 내리기 위한 부착식 사다리가 인상적이다.
황색 전구가 켜진 시장내부는 기온이 조금 낮은 듯 하다. 불빛아래 형형색색의 과일이 제 때깔을 뽐내고 있는 폼새가 먹음직스럽다. 정돈된 구획로를 따라 제철에 나는 각종 산물들이 번호 또는'유신'이니'영남'이니 하는 작은 상호푯말 아래 진열돼 있다. 여기저기서 이른 장보기를 나온 단골손님들과 상인들이 나누는 인사말이 살갑다.
"요즘 경기는 어때예" "아이고 말도 마슈. 월세 내기도 빠뜻한께." 24년째 칠성시장에서 양푼이밥 장사를 해온 영천보리밥집 정용자(63)씨는 너무 더워서인지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뜸하다며 차가운 숭늉을 건넨다. 날씨 탓에 상하는 날이 많아 반찬도 25가지에서 20가지로 줄였다. 보리밥 한 그릇 값은 2천500원. 그래도 허드렛일을 하는 인근 일꾼들과 끼니를 놓친 상인, 시장 볼 때 마다 으레 들르는 주부들에게 정씨의 양푼이 보리밥 한 그릇은 무더위 속 청량한 비타민과 같다.
"더울수록 잘 먹어야지. 손님들 양껏 줍니다. 보리밥만 세 그릇을 비우는 사람도 있당께요."
그렇더라도 조금 덜 먹는 사람들이 있어 큰 손해는 아니란다. 오랜 장사 연륜에서 얻은 그만의 경륜이다. 요즘은 특히 시원한 냉국이 인기 절정이다.
세상 살아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려면 시장에선 넉살이 좋아야 할 것 같다. 정씨 가게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경선시절 들러 먹던 보리밥 사진이 걸려 있다.'경제대통령'의 기대를 한 몸에 안고 청와대에 입성한 그는 현재 이런 서민들의 어려운 사정을 얼마만큼이나 실감하고 있을까.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성시를 이루는 칠성시장. 그 밤도 또한 낮처럼 치열한 삶의 현장이 되고 있다. 시장이 철시할 즈음이면 인근 도로가에는 포장마차가 줄을 짓고 고단한 서민들은 새벽 늦게까지 일상의 노고를 한 잔 소주로 달래기도 한다.
낮과 밤. 24시간 쉼 없이 돌아가는 칠성시장 안과 밖은 그래서 오늘도 대구라는 메트로폴리탄의 로망을 쌓아가고 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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