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유방암 투병 정영임씨

입력 2008-08-13 08:57:01

▲ 암세포가 생명을 단축시킬지언정 아들을 향한 모정을 줄일 수는 없다.
▲ 암세포가 생명을 단축시킬지언정 아들을 향한 모정을 줄일 수는 없다. "암과 싸운 내용을 모두 기록했다"는 정영임씨가 11일 오후 대구 파티마병원에서 병상에서의 기억을 더듬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정영임(가명·52·여)씨는 더위에 지쳐 있었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에서는 땀이 흘렀다. 11일 오후 정씨를 만나기 위해 찾은 대구 동구 신암동 파티마병원 8층의 한 병실. 머리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연방 이마로 흘러내리는 모습이 마치 병원의 더위를 혼자 이고 있는 듯해 보였다.

정씨가 다시 병원을 찾은 것은 두달 전. 벌써 세번째 재발한 암세포 때문이었다. 사그라질 만하다 싶으면 기를 쓰고 불거지는 암세포. 무더위와 독한 약물치료를 견디긴 쉽지 않았다. 지금은 체력이 떨어져 항암치료를 중단한 상태였다.

"며칠 사이에 살이 쏙 빠졌네요. 얼굴이 영 보기 안쓰럽네." 8층에 병실을 두고 있는 환우들은 정씨를 보며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정씨가 약물치료를 중단하면서 살이 빠진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탓이었다. "부기가 빠져서 그런 거니 걱정 말라"며 손사래 치는 정씨는 영락없는 이웃 아줌마였다.

정씨가 처음 병원을 찾은 것은 10년 전. 1999년 유방암으로 수술을 받았는데, 2004년에는 암세포가 척추로 자리를 옮겼다. 2006년에는 폐와 목구멍까지 위협했다. 지긋지긋한 암세포와의 싸움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꼬리뼈가 아파 병원을 찾았다가 암이 재발한 것을 알고 입원하게 됐다. "2004년에 1년밖에 못 산다는 말을 듣고도 지금껏 살았다"며 자신감을 보이는 정씨. 살은 빠졌지만 의지는 빠지지 않아보였다.

정씨가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 주영(가명·16)이 때문이었다. 중학교 3학년인 주영이는 정씨가 36세에 결혼해 늦게 본 아들. 동갑내기 남편과 결혼해 6년째 되던 해 유방암이 찾아왔고 암투병과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남편과 갈라선 이후 10년간 자신을 지켜봐온 아들이었다. "일찍 철이 들어 집안일은 물론 내 간호도 맡아온 아들이다. 그런 아들을 위해서라도 꼭 일어나야 된다"는 정씨의 눈은 이글거리고 있었다. 한창 사춘기를 겪을 나이의 아들은 방학을 맞아서도 매일같이 엄마 곁을 찾았다고 했다.

마침 취재진이 찾은 날엔 2박 3일 일정의 여름캠프에 가고 없었다. "하도 옆에 있고 나돌아다니지도 않아서 내가 꼭 좀 가라고 했어요."

정씨의 걱정은 자신의 병세가 아니라 아들의 미래다. 이 대목에서는 정씨도 "제가 언제 갈지 모르니까…"라며 약한 모습을 보였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정씨가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돈은 한달에 60여만원. 이 중 대부분은 의료보호 1종 혜택에서 예외인 자신의 약값에 들어간다. 아들을 먹이고 입히는 데 쓸 돈이 부족해 학원 한 번 보내지 못했다며 끝내 눈물을 비쳤다.

정씨는 자신의 투병생활을 기록해뒀다고 했다. 항암치료 이후 가물거리는 기억들도 한몫했다. 실제 정씨는 "아들이 몇년도에 태어났느냐"는 물음에 "83년"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정씨의 투병 수첩에는 99년 4월 8일에 유방암 수술을 했다는 기록에서부터 어떤 약이 몸의 어떤 곳에 잘 들었는지도 일일이 기록해두고 있었다.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약은 꼭 비싼 것들이에요"라며 옅게 웃어 보인 정씨는 "그래도 한번 이겨낸 사람이 두번 못 이기겠느냐"고 말했다. "요즘 날이 더워서 그렇지…"라며 말꼬리를 흐리는 정씨. 한풀 꺾인 더위조차 견디지 못할 만큼 체력이 떨어졌지만 모정과 삶에 대한 의지만은 조금도 떨어지지 않은 것 같았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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