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영화 감독 장이머우(57)가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궈자티위창)에서 쓴 대서사시는 강렬했다. 다만 공들인 흔적이 돋보인 개막 공연과 달리 앞서 열린 28개 소수 민족의 공연에서는 허술함이 느껴졌다. 찜통 같은 더위도 견디기 쉽지 않았다.
한국 기자단에 배당된 입장권은 30여장 남짓. 운좋게 입장권을 손에 쥐게 됐지만 회색빛이 감도는 바깥 공기와 더위 속에 5시간 넘게 버틸 생각을 하니 개막식 구경이 잠시 망설여졌다. 그래도 언제 다시 올림픽 개막식을 직접 볼 수 있으랴는 생각에 어느새 발길은 주경기장으로 향했다.
장이머우가 만든 개막 공연은 신선했다. 그는 1만5천여명에 달하는 많은 인원과 화려한 색채, 영상을 더해 1시간15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1부 '찬란한 문명'과 2부 '영광스러운 시대'로 중국의 역사를 담았다. 2천8명이 두드리면 파란 빛을 내는 중국 고대 타악기를 치면서 개막 공연 시작을 알린 뒤 경기장에는 중국의 긴 역사가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길이만 20m인 거대한 두루마리가 경기장 한가운데 펼쳐고 종이가 나타나자 검은 옷의 무용수들이 몸을 붓 삼아 수묵화를 그려냈다. 이어 경기장 가운데를 가르고 솟아오른 활자판은 죽간을 손에 든 공자의 3천 제자들이 사이에서 화합을 뜻하는 한자 '和'와 만리장성 등 다양한 문양을 생동감있게 엮어냈다. 중국의 리우환과 영국의 가수 사라 브라이트먼은 지구를 형상화한 둥근 공 모양의 무대 꼭대기에 올라 베이징올림픽 주제가 '유 앤 미'(You & me)를 부르며 화려한 공연의 대미를 장식했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눈에 띄었다. 오후 6시 무렵 시작된 중국 내 소수 민족들의 공연은 경기장의 각 귀퉁이에서 공연을 펼치는 바람에 다양한 모습을 한 눈에 보기는 힘들었다. 숫자도 적어 허전함을 지우기는 어려웠다. 뒤이어 펼쳐진 개막 공연과 비교할 때 상당히 소박(?)했다. 중국 문화의 다양성을 표현하고자 했다면 좀 더 신경을 써야 하지 않았을까.
분홍 한복과 부채, 붉은 치마와 노란 저고리에 장구를 멘 차림의 조선족 공연이 나올 때도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느낌이 낯설어 이것이 그들의 전통 문화라 할 수 있을지 의아해졌다. 이 공연 때 전광판에 나온 설명이라고는 '연변의 봄'이라는 제목 뿐이었다. 내몽골 자치구의 전통춤 공연도 마찬가지였다.
자원봉사자들과 보안 요원들, 중국인 관객들이야 올림픽을 치르는 자부심에 버틴다지만 습한 데다 30℃ 중반을 넘나든 무더위도 고역이었다. 높은 기온과 더불어 높게 쌓은 관중석 탓에 바람이 통하지 않고 조명에서 나오는 열기까지 더해져 연신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중국의 '체조 영웅' 리닝의 성화 점화로 마무리된 개막식을 보고 나오며 올림픽 후 중국은 '화합'과 '패권' 중 어느 쪽으로 변모할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개막식에서 중국의 발명품인 화약 대신(폭죽은 터뜨렸지만) 한자와 종이, 제지술을 앞세워 평화를 기원한 장이머우의 메시지처럼 중국도 그리 나아갈까.
베이징에서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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