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오케스트라 박스

입력 2008-08-09 06:00:09

아무래도 오페라보다는 콘서트가 우리에게 익숙한 것 같다. 남자들이 모두들 제비나 펭귄 같은 검은 옷을 입고 정렬해 앉은 채로 다양한 악기를 들고 있는 모습은 분명 콘서트의 상징 같은 장면이다.

그런데 오페라를 보러 가면 오케스트라가 있기는 하지만, 무대 앞 박스 속에 숨어있는 것을 보게 된다.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난생 처음 오페라를 보러간 줄리아 로버츠는 무대를 보더니 대뜸 하는 말이 "밴드도 있네!"다. 즉 그녀는 오페라이니 무대만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을 뿐, 그 아래에 숨어서 잘 보이지 않는 오케스트라의 존재에 대해서 놀랐던 것이다.

오페라 무대의 특징은 무대 아래에 박스를 만들어서 그 안에 악단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원래 그리스 시대 때부터 악단이 앉는 바닥을 오케스트라라고 불렀고, 지금 그것이 악단을 지칭하는 말이 되어버렸다. 반원형으로 된 고대 그리스의 야외극장을 상상해보자. 동심원으로 된 많은 객석들이 둘러져 있고, 앞에는 무대가 위치한다. 그 무대 앞에 동심원들 중 가장 작은 원이 있는데 보통 그 자리가 악단이 앉던 자리였다.

그리고 그 위치를 오케스트라라고 불렀다. 그 역사적인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어서, 유럽의 오페라하우스에 가면 간혹 티켓의 자리를 지칭하는 칸에 '오케스트라'라고 적혀 있는 경우를 본다. "아니, 내 돈 내고 가서 내가 직접 오케스트라를 연주해야 하는가?"하고 당황하시는 분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바닥의 자리, 즉 우리로 치면 1층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지금 '오케스트라'에는 관객들이 앉아 있고, 정작 오케스트라는 '박스' 안에 들어 있는 것이다. 야외극장에서는 오픈된 자리에 앉던 오케스트라가 위치했지만, 오페라하우스라는 실내 극장으로 오페라가 들어오면서 앞에 박스를 만들어서 그 안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 자리를 요즘은 '오케스트라 피트'라고들 부른다,

그래서 오페라 공연 때 가수들은 오케스트라보다도 뒤에 서서 노래를 부르게 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먼저 오페라에서는 가수들보다도 오케스트라가 더 중요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아무리 성악이 인기가 높다고 하더라고 오페라 연주의 중심이 되는 것은 바로 오케스트라인 것이다. 다음으로 오페라 가수들은 노래할 때 저 오케스트라를 뚫고 노래해야만 한다는 뜻도 된다.

콘서트에서는 오케스트라가 뒤에 있고 그 앞 협연자의 자리에 성악가가 위치한다. 이럴 경우 그는 오케스트라를 뒤로 두고 그 음악을 들으면서 관현악 사운드에 자신의 목소리를 실어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오페라에서는 자신의 목소리가 오케스트라의 음향 속을 뚫고 나가도록 불러내야 하는 것이다. 특히 바그너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같은 후기낭만주의 오페라들 중에서는 100여명이 넘는 대형 오케스트라가 위치할 때도 있어서, 성악가로서는 오케스트라와 협연인 동시에 쉽지 않은 대결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오페라에서 오케스트라는 관객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바그너가 설립한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 같은 곳은 오케스트라의 모습이 관객들의 극중 몰입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아예 무대 아래층에 오케스트라가 위치하게 하여, 소리만 들일 뿐 악사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 어쩌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 같지만, 그래도 오케스트라란 오페라의 근간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팀이다.

오페라 평론가·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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