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무는 개를 돌아본다

입력 2008-08-07 11:14:23

日 독도침탈 전방위 로비 구사/우린 '조용한 외교' 말로만 법석

'무는 개를 돌아본다'는 속담이 있다. 자기에게 관심을 돌리려 할 때 쓰는 말이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되는 일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본이 독도에 집요하게 달라붙는 것도 이런 효과를 노린 것이다. 무력으로 아시아 각국을 노골적으로 침탈해온 지난 세기와 달리 지금 일본은 우회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자기를 돌아보게 하는 전략이다. 부드럽지만 집요하고 은밀하게 일본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국가프로젝트다. 좋은 말로 국가 이미지 제고, 일본 알리기이지만 실체는 로비요 공작이다.

원래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숨겨진 게 더 무서운 법이다. 상대가 변함없이 관심을 가져주고 뒤를 봐주는데 외면할 사람은 많지 않다. 패전국의 신분에서 벗어나 경제강국으로서 자존심을 회복한 일본은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를 향해 많은 씨를 뿌리고 지금 거둬들이고 있다. 서구의 정치인과 관료, 지식인 등 엘리트 사회에서부터 대학생, 지도제작사, 인터넷사이트까지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들로 하여금 일본을 '아름다운 나라, 성실하고 정직한 국민성의 나라, 세련된 문화의 나라'로 믿도록 만든 것이다. 자신을 과대포장하고 은밀히 일을 꾸며 포섭한다. 독도도 이런 프로젝트가 노리는 먹잇감의 하나다. 일본에 동조하는 세력이 늘면 늘수록 한국 입장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세력은 줄게 마련이다.

독도를 분쟁지역화하기 위해 혈안이 된 일본은 자국 주장에 동조하고 힘을 보태줄 우군 포섭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다.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국제사회의 일반적 승인을 획득하기 위해 펴온 전방위적 로비는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 미 지명위원회(BGN)의 독도 영유권 표기 변경도 미국 지리전문가들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알아서 한 것이라고 믿을 사람이 있을까. 호사카 유지 교수의 지적처럼 'BGN의 결정은 일본의 장기적이고 집요한 로비가 미국 핵심층에 먹혀든 결과'다. 일본에 초청하고 세미나도 열어주고 관광도 시켜주는 그런 식으로 아주 부드럽게 상대를 기분 좋게 해서 내용을 바꾸도록 조종하는 일본 스타일에 미국이 넘어가고 한국도 당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은 도둑이 제 땅이라고 온갖 시비를 걸어도 그저 핏대만 올리고는 아무런 방비도 취하지 않는다. 정부가 '조용한 외교'라는 말로 대신하는 독도 정책은 한마디로 '침묵'이다. 학자들과 시민단체들이 '조용한 외교'의 함정을 누누이 지적한 바 있다. 국제법학자인 이장희 교수는 지난 2006년 독도 학술토론회에서 조용한 외교의 배후에 있는 '유키노 문서'라는 괴문서의 실체를 고발했다. "유키노 문서는 한국 역대 정부가 조용한 외교를 지속하도록 유도하는 고도의 일본 전략이 담긴 문서"라고.

2005년 3월 참여정부는 '한일 관계 4대 기조와 대응원칙 5개 항'을 발표했다. 독도에 대한 우리의 영유권을 확고히 수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듬해 4월 노무현 대통령은 특별담화에서 "독도문제는 더 이상 조용한 대응으로 관리할 수 없는 문제"라며 "독도문제에 대한 대응방침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독도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어떤 비용과 희생이 따르더라도 포기하거나 타협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의 의지는 굳세 보였다. 국가적 역량과 외교적 자원을 모두 동원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일본은 독도를 일본땅으로 만들기 위해 발벗고 나선 미국 외교관 윌리엄 시볼드 같은 수많은 동조자들을 지난 50년간 규합하고 엮어 왔다. 하지만 한국은 지한파 동양미술사학자인 존 카터 코벨 같은 인물들에게 손도 내밀지 않았다. 이런 무감각이 이제 우리에게 비수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무는 개를 돌아만 보는 시대가 아니다. 제 편을 위해 대신 물어주는 세상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최근 로마에서 열린 세계식량회의에서 낯이 뜨거워진 이유를 모른다면 독도는 늘 위기에 빠진다. 적을 이기려면 적에게서라도 배워야 한다. 그래야 두 번 다시 당하지 않는다.

徐琮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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