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동네에서 굿판이 벌어지면 온 동네 사람들이 와서 구경한다. 이들은 초청장 받고 온 사람들이 아니다. 그저 '누구 집에 굿한다더라'는 소문을 따라, 북소리와 방울소리를 좇아 왔을 뿐이다. 이들은 '누구의 목줄을 죄고 있는 귀신을 쫓아주십시오'라며 경건한 마음으로 빌지도 않는다. 그저 한바탕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심산이다. 그럼에도 이런 구경꾼들 덕분에 굿판엔 생기가 넘친다.
상화고택(대구시 중구) 앞마당에서는 6월부터 매달 두 번씩 '시민과 함께하는 詩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쉽게 시를 접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대구시가 주최하고 대구문인협회가 주관하는 행사지만 참석자는 일반 시민이 아니라 이른바 문화예술인들이 대부분이다. 간혹 강아지 앞세우고 골목을 산책하던 사람이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하지만 드문 경우다.
기껏해야 무당과 박수 2, 3명이 펼치는 굿판에도 구경꾼이 북적거리는데 상화고택 앞마당에서 열리는 '시 음악회'에는 어째서 구경꾼이 적을까? 굿판은 재미있는데 시 음악회는 시시해서? '시 음악회'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고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시와 음악의 조합은 왠지 낯설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더 큰 원인은 '높은 담' 때문일 것이다. 만약 상화고택 앞을 고층 아파트로 막지 않고 탁 트인 공원으로 만들었다면, 그늘 넓은 나무 몇 그루와 시민들이 오고가며 쉴 수 있는 벤치 몇 개를 놓았더라면 어땠을까?
'시 음악회 연다'고 전화통 붙들고 알리지 않아도 구경꾼이 북적댈 것이다. 유모차에 아이 태우고 공원에 산책 나온 젊은 부부, 잔디밭에 앉아 통닭이라도 시켜 먹던 가족들, 벤치에 앉아 연인을 기다리던 사람 누구나 관객이 될 것이다. 이들은 기대하지 않았던 '시 음악회'에 흥겨운 기분에 젖을 것이고 상화고택도 둘러보고, 상화 시 한편 읊조릴 것이다. 집으로 돌아갈 때는 우리나라 문학에 대한 자긍심도 한 보따리 챙길 것이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얻어먹은 셈이지만 이 구경꾼들이 한국 문학의 힘이다.
지금 상화고택 앞에는 주상복합 아파트가 우뚝 서 있다. 선생의 고택은 그 뒤에 아파트 노인정처럼 쪼그려 앉아 있다. 고택 앞 주상복합 아파트 허가와 건설에는 합당한 이유와 정당한 절차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덕분에 고택 앞마당에서 열리는 '시 음악회'는 초대장 받지 않고는 가기 힘들게 됐다. 누가 일부러 설명해 주지 않는 한 거기 상화고택이 있고 시 음악회가 열리는 사실을 알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눈앞의 이유에 충실하느라 우리는 '상화'를 오랫동안 잊어야 할지도 모른다.
대구시 중구 향촌동 일대에 대한 보존과 재개발논란이 한창이다. 이미 이 일대 180여가구 중 60% 정도는 25층 이상 아파트 건축에 동의했다고 한다. 하루하루 생활을 걱정해야 하는 주민들에게 역사와 문학, 예술을 위해 재산권을 포기하라고 할 수는 없다. 주민들의 재산권과 대구시민의 역사·문화적 재산권을 함께 챙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목표는 이율배반적이고 상충돼 보이지만 어느 한쪽도 버릴 수 없다. 쉬운 길을 택한답시고 향촌동의 낡은 집들을 싹 쓸어버리고 주상복합 아파트를 건설하는 순간 우리나라 '피란문학'의 역사는 사라진다. 남들(타도시)은 없는 무덤 앞에 비석을 세우는 형국인데 우리는 있는 무덤도 파헤칠 태세다. 상화고택 앞에서 열리는 구경꾼 없는 '시 음악회'는 쉬운 길을 택한 우리가 두고두고 치러야 할 정당한 대가다.
조두진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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