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남자들의 로망

입력 2008-08-04 06:00:51

첫날밤 남편은 아내의 손을 잡고 부탁했다. "때로는 귀여운 여동생처럼, 때로는 바다 같은 어머니가, 때로는 다정한 누님이, 때로는 열정적인 연인이 되어 주오."

참 욕심도 많지. 그 부인은 얼마나 바쁘겠는가. 매순간 남편이 어떤 역할을 원하는지 판단하여 전천후 변신을 해야 하니 말이다.

남자는 백치미 여성에게 끌린다? 찰나에 판단을 한다. 그녀가 예쁘고 섹시한 '마돈나형'인지, 선하고 지혜로운 '모나리자형'인지. 일단 미모의 그녀라면 좀 가볍고 지능도 낮으려니 예상한다. 도발적 제목으로 반향을 일으켰던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을 찍은 감독은 "남자들은 완벽한 여자보다는 뭔가 한 가지는 부족한 여자에게 더 끌린다. 그래서 여주인공이 다리를 저는 것으로 설정했다"고 직접적으로 마초이즘을 표현했다.

남자는 '마돈나'와 '모나리자' 둘 다를 원하지만 양립이 불가능하다고 믿기에 그 중 하나를 선택한다. 연애는 마돈나, 막상 결혼은 모나리자와.

다른 남자의 로망을 보자. 어린 시절, 주말의 영화는 어김없이 서부영화가 차지했다. 황야를 달리는 말, 비스듬히 비껴쓴 카우보이 모자, 입에 문 시가, 그리고 우수에 젖은 영웅은 석양이 지는 황야에서 사라진다. '놈, 놈, 놈'의 정우성은 말한다. 웨스턴부츠를 신고 신나게 말 달리며 서부의 총잡이가 되는 것이 어릴 때부터의 로망이었노라고, 그래서인지 실제로 스크린 속의 달리는 말과 일체가 되어 장총 돌리며 쏘기는 정말 멋있다.

남자는 남자답기를 원한다. 특히 남자다워 보이기에 열광한다. 다부진 근육질 몸매에 기싸움에서 상대를 선제 제압을 할 수 있는 강렬한 포스, 결코 동요되지 않고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강인함, 그리고 닳지 않는 에너지와 강력한 힘!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로망들이 여자에게는 전혀 공감되지 않는 것이라는 거다. 주말마다 되풀이되는 서부영화는 너무나 뻔한 구도의 삭막하기 그지없는 지루한 영화였고, 백치미의 지성이 부족하다거나 미인계를 무기처럼 내세우는 여성은 여자세계에서 결코 인정받지 못한다.

오히려 여자들은 로맨틱가이나 따뜻한 감성과 부드러운 배려심의 때로는 모성애로 감싸주고 싶은 남자에 대한 열띤 로망이 있다. 그래서 강력한 힘과 강인함만 내세우는 남성은 심히 부담스러울 뿐 어필되지는 못하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그래서 욕구와 평가도 다를 수밖에 없다. 자기 기준에 빠져서 상대도 그러리라 예상하고 확신하는 것에서 수많은 오해와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상대의 세계에 대해 선한 호기심으로 알아가며 이해하는 것, 그리고 다름을 인정하고 지속적인 조율과정이 함께 잘 살아가기의 근본이리라.

김은지(경산시청소년지원센터·문화의 집 소장)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