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詩·그림을 만나다] 공각기동대

입력 2008-08-02 06:00:21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이후 그 아류작들만 만들어 온 저패니메이션(일본 애니메이션)이 '공각기동대'로 그 모든 빚을 갚았다."

'터미네이터'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말이다. '공각기동대'에 보내는 최고의 찬사다.

'매트릭스'를 만든 워쇼스키 형제도 자신이 '공각기동대'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매트릭스'에서 녹색 문자가 쏟아지는 것과 네트워크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스미스 요원 등이 '공각기동대'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한국에서는 1996년 부산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된 '공각기동대'는 일본 애니메이션 팬들에게는 바이블과 같은 존재다.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넘어서는 섬세한 표현은 이제까지 만들어진 그 어떤 사이버 펑크 계열의 작품보다 현란하다.

홍콩을 떠올리는 미래도시 뉴 포트의 이미지는 가와이 겐지의 신비적인 음악과 어우러져 놀라운 영상효과를 보여준다.

이 작품이 13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아 꿈틀대는 것은 화려한 이미지 때문은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의문을 애니메이션의 틀 속에 녹여 넣은 것이다.

'공각기동대'의 영어제목은 'Ghost In The Shell'. 조개 껍질처럼 단단한 각질 속에 든 영혼이란 뜻이다. 여기서 각질은 사이보그의 몸이고, 영혼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존재의 의미다.

서기 2029년. 국가의 개념은 사라지고, 정보화 네트(Net)로 묶여진 사회만 존재한다. 인간은 기계 육체를 이용하면서 약한 몸의 한계를 벗어나게 된다. 기계 육체는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그 속의 영혼에 접속해 정보를 빼내는 고스트 해킹이 성행하게 된다. 외무부는 '인형사'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전 세계의 네트워크에 침입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인형사'가 자의식을 가지게 되면서 생명을 요구하게 된다.

등에 탯줄과 같은 굵은 관이 박힌 나체의 여인. 총을 들고 고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녀의 몸은 쇠와 전선으로 이뤄져 있다. 이 장면은 '공각기동대'의 대표적인 이미지다.

구사나기 소령은 극히 일부분인 고스트를 제외하고는 기계의 몸을 가진 사이보그다.

여기서 물음이 시작된다.

피가 흐르지 않는 나를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몸이 없고 네트워크 속에서만 살아있는 '인형사'는 기계일까, 생명체일까.

'공각기동대'는 인체의 기계화를 통해 어디까지가 인간인가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주제를 담고 있다. '인형사'도 자신의 시스템을 통해서는 자손을 남기고 죽음을 얻는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구사나기와 융합해 복제가 아닌 생명의 창조를 이루고 싶어한다.

자식을 낳고 싶어하는 지구 생명체의 영원한 DNA가 '인형사'에 박혀 있다. "나는 하나의 생명체로서 망명을 요청한다"는 '인형사'의 대사는 인간이 되고픈, 존재감을 느끼려는 한 개체의 절절함을 묘사하고 있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우광훈은 그것을 '인형의 꿈'으로 그려내고 있다.

'공각기동대'는 물의 이미지가 많이 등장한다. 도시에는 끊임없이 비가 쏟아지고, 대결의 순간마다 수로든, 물이 고인 오래된 건물이 나온다. 특히 서서히 떠오르는 나신이 수면과 만나는 장면은 생명을 두고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는 경계를 절묘하게 표현해 내고 있다.

여기서 물은 정보의 바다와 모태 속 생명수를 동시에 보여준다.

시인은 그 물에서 희망을 엿보았다. 인간이란 단어의 정의마저 모호해진 헝클어진 미래, 밀랍으로 봉해진 네트워크의 바다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여인의 나신은 마치 모태에서 빠져나오는 새로운 생명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픽디자이너인 박병철씨는 푸른 톤의 이미지에 구사나기 소령을 앉혀 놓았다. 푸른 빛은 혼을 잃어버린, 차갑고 슬픈 이미지다. 진정한 인간인 나를 찾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것이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 1995)

감독:오시이 마모루

출연:다나카 마츠코(목소리), 오츠카 아키오(목소리)

러닝타임:83분

줄거리: 서기 2029년. 세계는 넓은 통신망으로 연결돼 있다. 인간들은 이 광활한 세계에서 진짜 몸을 대신하는 사이보그 육체를 통해 정보를 교환한다. 범죄 역시 네트워크와 사이버네틱스 공학을 이용한 형태가 등장하고, '인형사'라는 정체불명의 해커가 질서를 어지럽힌다. 공안9과 공각기동대의 구사나기 소령은 인형사와의 접속을 통해 사이보그인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려 시도하고, 정치적인 관계에 얽혀 있는 공안6과와 대결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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