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의 교육프리즘] 들뜬 사회와 균형감각

입력 2008-05-20 07:59:46

이 눈부신 계절에 우울한 편지를 받았다. "선생님, 고2 여학생입니다. 중간고사를 망쳐 엄마와 싸우고 죽어 버릴까 생각했습니다. 물론 제 자신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시험 기간에도 인터넷만 했으니까요. 저는 인터넷에서 많은 글을 읽습니다. 어려운 책을 쉽게 설명해주고 요점을 잘 정리해주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에서 실존주에 대한 글을 읽었는데 인간의 삶이 너무나 암담하고 비극적인 것 같아요. 살아도 희망이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인터넷에서 읽은 내용이 맞는 것 같아요. 제가 살아야 할 이유와 희망이 있을까요? 귀찮더라도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학생의 긴 글을 일부만 요약하고 정리한 내용이다.

인터넷이 문명의 이기라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어떤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한 준비 단계에서 인터넷은 훌륭한 길잡이와 동기 유발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학생은 인터넷에서 실존주의에 관한 단편적인 글을 접하고는 자기 삶과 현실에 대해 멋대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학생은 편향된 관점에서 어느 한 부분만을 두드러지게 강조하는 글을 접하며 인간이란 비합리적이고 부조리와 우연성에 가득한 비극적 존재라는 생각에 깊이 빠져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학생은 인간은 실이 끊어진 연처럼 고독하게 세계와 마주하고 있지만, 불합리와 부조리한 상황에 용기 있게 맞서 싸우며 보다 나은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부단히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글은 읽지 못한 것 같았다.

우리는 너무 조급하다. 즉흥적이고 즉물적인 사고방식과 선정적인 충동성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의 질적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과거에 대한 진지한 성찰, 현 상태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과 진단, 미래에 대한 우려와 전망 등이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차분하게 음미되지 않는다. "인터넷을 포함한 미디어는 '지금 여기'를 제외한 모든 것을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하고, 사고의 호흡을 가쁘게 하고, 생활리듬을 일희일비 속에 들뜨게 만든다."라고 지적한 어느 학자의 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쇠고기 개방 문제로 많은 청소년들이 사회적 이슈 한 가운데로 뛰어들고 있다. 인터넷과 TV 등 일부 매체들이 어린 학생들을 광장으로 내몰고 있다는 부정적 시각이 있고, 현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적극적인 의사표현은 그 동기가 순수할 뿐만 아니라, 사회 발전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하는 시각도 있다. 어느 쪽이나 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다만 모두가 들떠있는 지금, 독서와 사색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좌표를 정립하고,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다양한 견해와 방법을 공부하며, 때로는 거리를 두고 어떤 현상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를 묵살해서는 안 된다.

윤일현 교육평론가·송원교육문화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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