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좀비와 미이라

입력 2008-05-10 07:00:37

광우병 파동으로 세상이 혼란스럽습니다. 교복 입은 학생들이 거리에 나서고 연일 촛불 시위가 벌어집니다.

헤게모니 싸움이 벌어지면 괴담이 난무하기 마련입니다. 숭례문 괴담이 대표적입니다. "숭례문이 완전히 타면 도읍과 나라의 운이 다한 것이니 멀리 피난을 가야 하느니라." 조선의 건국공신인 정도전이 이런 예언을 했다는 겁니다. 정도전이 그런 예언을 했다는 정사의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근거 불명의 이런 황당한 괴담이 번지는 것은 우리 사회의 정상적 소통 경로에 경색 현상이 빚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정부는 상황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국민 건강권이 가진 폭발력을 미리 가늠치 못하고 미국 쇠고기 수입 협상을 타결했습니다. 광우병에 대한 국민들의 공포를 근거 없는 괴담에서 비롯된 것으로, 촛불집회를 좌파 선동 반미운동으로 몰았습니다. 괴담이 확대 재생산되도록 자양분을 준 것은 아닐까요.

지금 겪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공포는 비이성적이며 과장된 것일 수 있습니다. 공포 분위기만 조성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안전하다고 안심시키는 것 역시 능사는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공포, 그것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면 과장된 걱정으로 사회가 대처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선택입니다.

한국인들은 소의 뿔과 발톱을 제외한 모든 부위를 먹습니다. 그동안 30개월령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와 뼈, 내장은 소비의 물꼬가 막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협상 타결로 인해 한국에 그런 쇠고기와 위험 부위가 몰려올까 두려운 것입니다. 미국산 쇠고기가 절대 안전하다고 되뇌는 당국자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30개월령 넘은 미국산 쇠고기의 사골 진하게 우려낸 곰탕에다 곱창 전골을 곁들여 가족들과 수시로 드실 수 있느냐고.

1968년 미국의 영화감독 조지 로메로는 좀비 영화의 효시 '살아 있는 시체들의 새벽'을 만듭니다. 살아있는 시체 즉, 좀비들은 2000년대 이후 미국 호러 영화의 주류 캐릭터가 됩니다. 인육을 갈구하며 비틀비틀 거리를 헤매는 좀비들의 갈지자걸음이 광우병 걸린 소의 그것과 비슷하게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인수위가 활동하던 당시, 업무 보고하던 고위 공직자가 이렇게 말했다지요?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그러나 정권 바뀌었다고 몇개월 만에 말과 행동·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일부 고위 공직자들을 보니 영혼이 없는 게 아니라, 뇌에 국민을 생각하는 부위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구멍이 뚫렸거나.

'썩을 놈'이라는 욕이 있습니다. 들으면 자존심 상하는 욕인데, 세상이 하도 요상하게 돌아가다 보니 자칫하다간 축복의 말로 들리는 시대가 올까 걱정스런 요즘입니다. 항생제, 살충제, 방부제, 환경호르몬, 유전자 변형식품에다가 광우병 단백질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 고기를 먹다 보면 죽어서도 썩지 못하는 미라가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김해용 기획취재부장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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