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구두'분홍신 정겨운 이름들 그 편안함도 함께 사라졌다
'분홍신'과 '칠성구두'! 서울을 중심으로 한 기성화의 공세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대표적인 대구의 수제화(手製靴) 브랜드들이다. 뛰어난 품질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들 수제화 브랜드에는 대구경북 사람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기계로 찍어내는 기성화는 구두에 사람의 발을 맞추는 것이라면 수제화는 사람의 발에 구두를 맞추는 것이지요. 그 사람의 발에 딱 들어맞도록 구두를 만들기 때문에 수제화는 발이 편하다는 데 가장 큰 장점입니다."
1960년대 중반부터 2005년까지 40년 가까이 칠성구두를 경영했던 장주섭(73)씨. 동성로에서 만난 그는 수제화의 매력부터 강조했다. 예천 출신으로 서울에서 인쇄업을 하던 장씨가 대구 중구 화전동 옛 자유극장 건너편에 있는 칠성구두와 인연을 맺은 것은 60년대 초반. "칠성구두가 임차한 건물이 제 소유였지요. 10여년 가량 칠성구두를 경영하던 전씨 성을 가진 사장이 중기업에 진출했다가 부도를 냈어요. 구두를 만들던 기술자들은 그대로 있고, 칠성구두가 세를 든 건물도 제 소유여서 자연스럽게 가게를 인수하게 됐습니다." 매형이 1년 정도 칠성구두를 경영하다 그 이후부터 계속해서 장씨가 경영을 맡았다는 것.
이 무렵 중구 화전동 일대는 '수제화의 메카'였다. 분홍신이 옛 자유극장 옆에, 칠성구두는 그 건너편에 자리를 잡는 등 수제화 가게들이 밀집했다. 이들 수제화 브랜드는 1층엔 점포, 2층엔 공장을 두고 수제화를 생산·판매했다. 칠성구두의 경우 구두를 만드는 종업원은 30여명, 점포에서 구두를 파는 종업원은 8명에 이르렀다.
"60~80년대가 칠성구두의 최고 전성기였어요. 구두를 맞추기 위해 손님의 발을 잰 계량지가 수북히 쌓일 정도였지요. 하루 100켤레 이상을 판 적도 있습니다." 납품 기일을 맞추기 힘들 정도로 주문도 쏟아졌다. 당시 수제화를 만드는 기술자들에겐 월급이 아닌 도급제 임금을 지불했다. 만든 구두 1켤레당 얼마씩 돈을 줬다는 것. '선생'이라 불리는 최고 기술자가 있었고, 그 밑으로 상·중·하로 나뉜 견습생을 뒀다. 적어도 3,4년 이상 종사해야 기능공으로 인정받았다.
70년대 칠성구두의 수제화 판매가는 1만원 중반에서 고급품은 4,5만원선. 말의 엉덩이 가죽으로 만든 최고급 수제화는 20~30만원에 달했다. 발이 편하고 품질이 뛰어나다보니 칠성구두를 찾는 손님들은 도지사에서부터 대학생까지 장사진을 이뤘다. "도지사를 비롯해 공무원·경찰관·기업인·회사원·대학생 등 수요층이 매우 다양했어요. 단골 손님들은 나무로 만든 발틀을 만들어두고, 색깔과 디자인을 주문하면 바로 구두를 만들어 드렸지요." 장씨는 이의근 전 지사와 김홍식 초대 대구시의회 의장 등을 단골손님으로 꼽았다. 칠성구두의 명성이 워낙 높다보니 대구경북은 물론 제주 등 전국에서 주문이 들어왔다. "다른 지역으로 전출간 공무원들이 계속 주문을 했지요. 발을 잰 계량지를 가게에 계속 비치, 전화로 구두를 주문하는 분도 있었어요."
칠성구두를 흉내낸 '짝퉁'도 활개를 쳤다. 칠성구두란 브랜드는 물론 금관 모양의 마크까지 똑같이 흉내낸 수제화들이 기승을 부릴 정도였다는 것. 장씨가 경북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며 짝퉁 칠성구두를 찾아낸 적도 있다. 칠성구두는 신문이나 TV광고를 하고, 상품권을 만들기도 했다.
80년대 이후 기성화가 대대적인 공세를 펼치면서 칠성구두에도 그늘이 드리워졌다. "기성화가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대구의 수제화가 설 자리가 점점 없어졌지요. 수제화를 찾는 손님들도 줄어들고, 구두를 만드는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도 없어지면서 수제화의 명맥이 갈수록 끊기게 됐습니다." 단골 손님들의 성원으로 그나마 자리를 지키던 칠성구두는 2005년에야 문을 닫았다.
칠성구두와 함께 40년을 보낸 장씨는 수제화와 함께한 인생에 보람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손님으로 와 수십여년동안 인연을 맺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대구 수제화의 명맥이 갈수록 희미해져 안타깝지만 많은 분들에게 편하고 질긴 구두를 만들어 드렸다는 데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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