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친일' 이해했을지 몰라도 독립투사들은 용서 한적 없어"
김동인은 그의 대표 단편 '광염소나타'를 통해 그의 예술 지상주의적 세계관이 잘 드러낸 바 있다. 소설의 주인공 백성수는 방화, 살인, 시간(屍姦) 등의 행각에서 얻어진 영감을 통해 불세출의 소나타를 작곡하는 엽기적 예술가다. 그리고 김동인은 아래에 소개된 K씨의 논평으로 소설의 종지부를 찍음으로써, 예술을 위해선 변변치 않은 사람의 목숨마저도 희생될 수 있다는 극단적인 논리를 설파한다.
방화? 살인? 변변치 않은 집 개, 변변치 않은 사람 개는 그의 예술의 하나가 산출되는데 희생하라면 결코 아깝지 않습니다. 천년에 한 번, 만 년에 한 번 날지 못 날지 모르는 큰 천재를, 몇 개의 변변치 않은 범죄를 구실로 이 세상에서 없이하여 버린다 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 아닐까요.(광염소나타 중 K씨의 말) 『광염소나타 외(한국문학읽기1)』 김동인 지음/북앤북/207쪽/7500원.
물론 이것은 문학적 과장이지만, 예술가에게 있어 예술은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라는 점에 대한 명료한 부연이기도 하다. 로커 신중현은 유신정권으로부터 활동금지 처분을 당하자 한때 자살을 결심했었다고 고백한다. 김동인을 비롯한 일제 강점기 치하의 예술가들도 똑같은 궁지에 몰려있었음을 우리는 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이광수가 소설을 위해, 서정주가 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제에 협력했던 것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또, 가녀린 최승희가 춤을 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제에 헌금했다는 사실에 오히려 연민을 느낀다. K씨처럼 그들의 '예술적 성취'와 '변변치 않은 범죄'를 구분하여 생각하자는 의견이 오늘날의 청와대의 입장인 만큼, 우리 조국은 많이 관대해지고 솔직해졌다.
그러나 우리의 선조 중에는 유치환의 '피의 법도'도 최승희의 '얇은 사 하이얀 고깔'도 도무지 용납할 수 없었던 고지식한 영웅들이 있었다. 춘원이 '일진회'의 후원으로 동경에 유학하고, 평양갑부 동인이 경성의 기생들과 풍류를 즐길 때, 거친 만주와 살벌한 상하이에서 투박한 꿈을 꾸던 협객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쿨한 세상의 배부른 후손들은 TV 토론회와 뉴라이트 교과서에서, 저들의 '인간적 딜레마'를 역지사지로 이해하고 용서했을지 몰라도, 제 간난 자식들을 떼어두고 살신했던 독립투사들은 단 한번도, 노천명의 '님의 부르심'과 미당의 '카미카제' 시풍을 용서한 적이 없다. 그리고 실용과 미래를 위해 그들의 '님'까지 넙죽 용서해버린 우리는, 이제 의사의 쓸쓸한 무덤 앞에 찾아가 술 한잔 따를 염치와 면목도 없이, 먼발치서 가슴이 찢어질 듯 죄송스러워만 할 뿐이다.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잔의 술을 부어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윤봉길의 마지막 시 '강보에 싸인 두 아들 모순과 담에게'의 일부분) 『시인 윤봉길과 지인의 서정시 340수』 진영미 외 지음/역사공간/398쪽/1만800원.
박지형(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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