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잃어버린 문명/ 피터 마셜 지음/손희승 옮김/역사의 아침 펴냄
인간의 역사에 '황금시대'가 있었다. 상상 속 유토피아가 아니라 역사에 3천년 동안 존재했다.
황금시대 인간은 전쟁하지 않았다. 그들의 무덤과 주변에서는 무기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의 유적지는 그들의 땅이 적을 막기 위한 요새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황금시대 사람들 사이에는 계급이 없었다. 공동무덤에는 부장품이 별로 없었다. 이는 이들 공동체가 계급 없는 사회였음을 의미한다. 당시의 지도력이란 공동체 구성원을 모두 휘하에 두는 것도, 대물림되는 것도 아니었다. 낚시나 사냥, 가축사육, 항법 등에 재주가 있는 사람의 말에 조금 더 귀기울이는 정도였다. 그들이 바로 '황금시대'를 살았던 '거석인'들이다.
'거석'은 기원전 5000년에서 1000년 사이에 등장한 말로, 큰돌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이 책은 누가, 왜 거석을 세웠는가? 거석은 인류사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지금 우리에게 거석은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지은이 피터 마셜은 거석문화가 고대 뱃길을 따라 전파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대 뱃사람들이 쓰던 배와 비슷한 7m 크기에 4노트 정도 속도를 내는 배를 타고 항해했다. 대서양 서쪽에서 지중해까지 7개월 동안이었다.
인류가 거석을 세우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5000년부터 기원전 2000년 사이이다. 당시 사람들은 부족이나 종족 단위로 조직됐다. 늪지나 산, 숲 같은 자연을 경계로 했다. 주로 해안가나 강 상류 쪽에 살면서 바다를 통해 교류했다.
거석인들의 남녀관계는 평등했다. 남녀는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졌다. 남녀관계가 느슨했으므로 어머니가 유일한 부모였다. 모계중심사회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과학을 몰랐지만, 그들이 사는 땅(지구)을 잘 알았다. 거석 유적은 그들이 지구의 에너지를 파악하고 주변 환경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거석의 배열은 그들이 하늘과 땅 사이의 교감, 지상과 지하의 소통을 소중히 여겼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거석문화는 유럽에서 고도로 발달한 문명, 바다를 중심으로 일어난 문명, 어쩌면 인류역사에 다시 오지 않을 '황금시대'에 대한 기록이다.
지은이는 배를 타고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지인 스코틀랜드 스카라브레에서 출발, 아일랜드, 웨일스, 잉글랜드,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을 거쳐 지중해의 마요르카, 메노르카, 코르시카, 사라드니아, 튀니지, 시칠리아, 몰타 섬의 주요 유적지를 살폈다.
토마스 하디의 소설 '테스'에도 등장하는 영국 남부 솔즈베리 평원의 스톤헨지를 비롯해 세계에서 거석이 가장 많이 밀집한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카르나크와 코르시카의 인간형상 선돌, 몰타의 므나이드라 돌 신전 등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유럽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 유적들을 방문했다.
서유럽에 5만개가 넘는 거석이 있지만 거석이 유럽의 전유물은 아니다. 거석 유적은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북아프리카, 카프카스,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아라비아, 이집트, 에티오피아, 수단, 마다가스카라, 중국, 한국, 일본, 페루, 과테말라, 멕시코 등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세계 곳곳의 거석은 닮은 면이 많다. 고인돌과 환상열석은 모양이 비슷하고 천문학적으로 배치한 점도 일치한다. 조상숭배 등 종교적 의미도 비슷하다. 지은이는 '바다를 통해 전파된 세계적인 종교에서 거석문화가 유래했다고 볼 수 있을까?'라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거석인은 우리와 의식구조가 달랐다. 지은이는 '우리가 그들보다 아는 것이 더 많을지 몰라도 지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거석인은 예술과 과학, 종교와 철학, 천문학적 점성술을 구분하지 않고 통합적으로 접근했다. 이성과 직관, 머리와 마음, 우뇌와 좌뇌를 구분할 필요도 없었다.
거석의 시대, 평화의 시대, 황금시대는 기원전 2000년, 금속무기로 무장한 호전적인 부족이 유럽을 침략하면서 끝났다. 평화를 상징하던 돌도끼 대신 전쟁의 상징인 청동검이 자리 잡았다.
청동기인들은 전쟁을 위해 혹은 전쟁을 대비해 광석을 찾아 나섰고, 무기와 공예품을 만들고 수비와 공격을 조직적으로 전개했다. 전쟁을 통해 노예를 확보했다. 전사계급의 출현으로 계급사회가 탄생하고 여성중심의 평등한 시대는 사라졌다. 일부일처제가 정착하면서 아버지의 위치가 공고해지고 부계사회가 되었다. 돈 많고 힘센 전사들은 부와 명예, 힘을 아들에게 물려주었고 대대로 세습되었다. 이후 사람들은 끔찍한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거석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는 제각각이다.
어떤 농장주나 땅주인, 건축업자는 거치적거린다는 이유로 돌을 옮기고 부숴 버렸다. 어떤 이는 거석을 야만인이 남긴 거칠고 조잡한 것으로 여긴다. 또 어떤 이는 선조의 지혜를 담아 아름다운 자연경관 속에 자리잡은 거룩한 조각품으로 보았다.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돌을 보고 죽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고고학자는 죽은 물질만 발견한다. 만약 어떤 고고학자가 자신의 일을 땅 파고 기록하고 분류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면 거석에서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거석을 존중하고 그것을 만든 사람의 의도와 믿음을 느끼는 고고학자는 많은 것을 얻을 것이다."
지은이는 거석은 '죽은 돌'이 아니라 생명을 가졌으며 우주와 교감한다고 말한다. 거석은 인간의 염원을 담고 있으며 변하지 않는 기념물을 세우려는 인간 욕구의 표출이라는 것이다. 거석을 살아있는 '생명'으로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시간을 넘어 고대인과 교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
연휴는 짧고 실망은 길다…5월 2일 임시공휴일 제외 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