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3시쯤 대구 달서구청이 운영하는 호림동 플래카드 재활용센터. 165㎡(50여평) 남짓한 작업실에 공공근로자 5명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사무실 한쪽에 설치된 두대의 재봉틀은 '징징' 소리를 내며 쉴새없이 천 조각을 쪼아댔고 그 옆에 설치된 마름 작업대에선 '친박연대…' '기호 2번…' 등 선거 때 나부꼈던 플래카드들이 정해진 길이만큼 척척 잘려 나왔다.
선거철마다 제때 떼내지 않아 도시미관을 해쳤고 다이옥신 등 플래카드에 함유된 유독물질로 소각, 매립하기도 마땅치 않아 그동안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폐플래카드가 이제는 청소 포대, 앞치마 등 생필품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4·9 총선에 사용된 플래카드는 전국적으로 1만7천여개 22.5t(자원순환사회연대 추정)에 달하고 대구에만 1t이 훨씬 넘는다.
달서구청은 2년 전부터 벌여온 플래카드 재활용 사업을 벌여 쏠쏠한 효과를 내 왔다. 개당 220원을 주고 구입해야 했던 청소용 포대를 살 필요가 없어 연간 수천만원에 달하는 예산 절감은 물론 플래카드를 소각하지 않아도 돼 환경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달서구청 김정호 청소과장은 "달서구에서만 연간 수거되는 폐플래카드가 4만8천장 정도 되는데 센터 설치 이후 폐플래카드에 대한 걱정을 덜었다"고 했다.
플래카드를 활용한 포대는 내구성이 좋고 사용하기에 편리해 청소부들 사이에서도 인기다. 청소부 이모(49)씨는 "기존 청소용 포대는 잘 해지고 쓰레기가 걸려 사용하기 불편했는데 플래카드 포대는 미끌미끌해 쓰레기가 잘 담기고 튼튼하다"고 했다.
작업을 하는 공공근로자들 사이에 에피소드도 많다. 이곳에서 1년 남짓 박음 작업을 하고 있는 장모(42·달서구 상인동)씨는 "플래카드에 식당, 학원, 각종 행사 등의 위치와 연락처들이 빼곡히 적혀있어 직접 가지 않아도 어디에 무슨 시설이 있는지 알 정도"라며 "종종 플래카드를 보고 점심을 주문한다"고 했다. 이들은 하루에 포대 수백개를 만들다 보면 "선거홍보물을 보지 않고도 누가 당선될지 알았다"면서 재봉틀 앞에 앉아서도 천리를 내다보는 눈(?)을 갖게 된다며 웃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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