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살아서 돌아오라'의 속마음

입력 2008-04-08 09:33:27

참 이상한 국회의원 선거다.

내일이면 투표를 해야 하는데 선거판에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외에는 정책은 물론 후보자도 없다.

한나라당 후보는 물론 한나라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도 박 전 대표와의 친밀한 관계를 강조하는 '친박' 마케팅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고 정당사에 유례없는 '친박연대'라는 정당도 생겼다.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에 있는데 한나라당 후보와 한나라당을 탈당한 친박연대, 무소속 후보까지 친박이다.

심지어 친이 후보까지 '박근혜는 2번, 나도 2번'이라고 말하고 있다.

'살다 보니 무슨 이런 선거가 다 있는가'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할 정도다.

정치입문 10년 만에 정치구도를 뒤흔들고 있는 박 전 대표의 가공할 만한 정치적 파괴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녀보다 조금 더 일찍 정치부기자 노릇을 시작한 덕에 지난 1997년 12월 대선 직전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에 입당, 첫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 있었다. 그 때 그녀는 지금처럼 연설을 하지도 못했고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할 만큼 화술을 갖추지도 못했다. 이회창 후보 지원을 위해 전국 지원유세에 나섰지만 정권교체를 막아내지 못했다. 그 때까지는 누구도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영향력이 지금처럼 대단하게 될지 예상하지 못했다.

다음 해 2월 김석원 전 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6월 보궐선거가 실시되자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국회에 진출했다. 그녀가 가는 곳마다 사람이 몰려들었다. 그 때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고 육영수 여사에 대한 향수 정도로 치부됐다. 그녀는 이어 2000년 허주 등 민정계 출신을 대거 낙천시킨 공천파동 때 살아남아 16대 국회에 재입성했다.

그리고 4년 후인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역풍으로 한나라당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자 그녀는 전국을 순회하면서 역풍에 맞서 한나라당을 지켰다. 그녀는 한나라당의 유일한 구원투수이자 최후의 보루였다.

그녀는 2004년 7월 한나라당의 대표로 선출됐다. 2년 후 강재섭 대표에게 당을 넘겨주고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자신을 지지했던 친박계가 대거 탈락한 한나라당 공천파동을 겪고 나서 지역구에 내려온 그녀는 다시 탄핵역풍 때와 같은 정치적 파괴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녀는 지난달 24일 대구에 내려온 후 다른 후보 지원에는 나서지 않겠다는 '지원유세 보이콧' 방침을 지키고 있다.

다만 경선 당시 자신을 도왔던 일부 한나라당 후보에게 자신과의 인연을 강조하는 동영상을 만들어 간접 지원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박 전 대표의 이 같은 침묵과 지역구 칩거는 사실상 '시위'이자 저항이다. 그녀의 한 측근은 "박 전 대표가 눈앞의 이익을 바라보는 정치를 하고자 했다면 친박 후보는 물론 전국에서 90~100석의 박근혜계 당선자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박 전 대표의 정치력이 파괴력을 가지는 것은 무섭게 자기 것을 포기하는 원칙있는 정치를 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탈락한 친박 의원들에게 '살아서 돌아오라'며 안타까워했던 그녀는 정말로 그들의 당선을 바라는 것이었을까.

그녀의 속마음이 무엇이었든 간에 한나라당 후보에 맞서 얼마나 살아남을지에 따라 그녀의 정치적 행보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 총선결과에 관심이 집중된다.

서명수 정치부 차장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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