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많은 스승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고백건대 나는 교실 안에서 배운 것보다 교실 바깥에서 배운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일찍이 서정주 시인이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라고 고백했듯이,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책과 여행이었다. 이 두분이 지금까지 내가 모시고 있는 큰스승이시다.
아마 나는 평생 책을 읽으며 살아갈 행복한 팔자를 타고 태어났던 모양이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나를 가졌을 때 꿈 속에서 책 읽는 남자를 보았다고 하시니, 태몽치고는 별난 태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어릴 때부터 나는 책을 좋아했다. 책 읽기뿐만 아니라 책 모으기도 좋아하여 삼중당문고가 300원 하던 시절부터 한권 두권씩 사 모은 책이 어느새 수천권이 되었다.
책은 세상에 관한 모든 것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책 속에는 살아 펄떡펄떡 뛰는 삶의 온기와 생동감이 부족했다. 그 아쉬움이 나를 여행길로 이끌었다. 낯선 곳을 향해 떠나는 길 위에서 만나게 되는 새로운 풍광과 지나간 세월의 흔적들, 그리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 다채로운 모습들. 이들과의 만남은 스스로를 뒤돌아보게 만들고, 결국 나는 새로운 나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처럼 여행은 나를 가르치고 키웠다. 스님들의 운수행각(雲水行脚)이나 중세 유럽 젊은이들의 편력 여행 또한 자기 성찰과 성장을 위한 배움의 길이 아니었던가? 책이 '종이 위의 스승'이라면, 여행은 '길 위의 스승'이다.
그래서 나는 수업시간 중에 틈틈이 학생들에게 책 읽기와 여행하기를 권하곤 한다. 다행히 수년 전부터 대구시교육청이 독서운동을 역점사업으로 추진한 덕분에 예전에 비해 학생들이 책을 많이 읽기는 한다. 하지만 의무로 하는 독서는 자칫 책 읽기를 지겨운 일로 만들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학생들로 하여금 책을 읽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 읽기의 즐거움을 맛보도록 해 주는 일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야 이 학생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책을 읽게 될 것이고, 책 읽는 부모를 보고 자라나는 그 자녀들도 책 읽는 아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학생들은 공부하느라 바빠서 여행 떠날 시간이 없다. 그러나 나의 경우를 보더라도 교실 바깥에서 배운 것들이 지금까지 살아오는 데 더 도움이 되었다. 밤 늦게까지 자율학습을 시키며 교실 안에 가두어 둘 게 아니라 학생들을 교실 바깥으로 내보내야 한다. 주말에도 학원이다 과외다 하면서 영어 수학 공부만 시킬 게 아니라 산으로 시장으로 박물관으로 학생들을 내보내야 한다. 그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적어도 방학 때만이라도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여행은 학생들을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지닌 사람으로 길러내는 '길 위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변준석(시인·영진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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