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시안미술관 '국제미술컨퍼런스'

입력 2008-04-07 07:47:19

"한국미술 유럽서도 경쟁력 충분"

"런던은 뉴욕과 더불어 세계 미술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유럽미술의 중심지입니다. 하지만 최근까지 런던에서 한국현대미술작가들의 작품을 대대적으로 소개하는 전시나 크게 주목받는 작가는 거의 전무한 실정입니다."

국제적 눈높이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에서 제기된 한국 현대미술의 한 단면이다. 영천의 시안미술관(관장 변숙희)과 뉴욕의 한미문화교류 기획사 '오픈 워크(OPEN WORK)'가 공동기획한 국제미술컨퍼런스가 '한국현대미술, 미래를 위한 검토와 제안'이라는 주제 아래 5일 오후 시안미술관 별관에서 열렸다. 뉴욕에서 활동중인 미술평론가 문인희, 미술잡지 ArtKrush 편집장 Paul Laster, 아레나갤러리 대표 Renee Riccardo, 경매회사 Phillips de Pury & Company 현대미술 담당 전문가 Timothy J. Malyk와 국내 미술전문가인 평론가 강선학, 이은화, 장동광, 월간미술 편집장 이건수씨가 패널리스트로 참석, 한국현대미술의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는 귀중한 시간을 가졌다. 특히 뉴욕과 한국 미술계의 저명인사들이 대거 영천에 모인 것은 지방 문화의 국제화와 국내 문화 분권화 차원에서 남다른 의미를 가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배동환 신라대 교수와 한동신 오픈 워크사 대표가 공동 사회를 맡은 이날 행사에서는 한국현대미술의 국제 인지도 문제가 도마위에 올랐다. 무라카미 다케시로 대표되는 일본 미술, 경이로운 성장을 기록하며 아이웨이웨이(Ai Weiwei), 차이궈치앙(Cai Guo-Qiang), 위에 민쥔(Yue Minjun), 장환(Zhang Huan)을 슈퍼스타로 만든 중국 현대미술, 수보드 굽타와 지타시 칼라트를 배출한 인도미술 등 지난 10여년 동안 아시아 미술은 큰 성장세를 보였지만 한국 현대미술은 최근 뉴욕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을 뿐 유럽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

이에 대해 Paul Laster 편집장은 "지금은 한국현대미술에 주목해야 할 시기"라며 "뉴욕의 유명 갤러리들이 한국미술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 현대미술의 미래는 밝다"고 말했다.

반면 이은화씨는 "런던에서의 한국 현대미술 위치와 전망'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2002년 서핀타인갤러리에서 열린 서도호 개인전을 제외하면 국제적으로 검증된 한국작가들조차 런던에서 주목받는 개인전을 연 적이 없다"며 "이는 인지도가 낮은 한국 작가들을 알릴 수 있는 공식적인 창구나 시스템이 전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지난 2월에 열린 런던 소더비 현대미술 메이저 경매에 출품된 아시아 미술품 목록을 보면 중국과 일본 작가들이 대다수를 차지했고 한국 작가로는 김동유가 유일했다"고 덧붙였다.

이은화씨는 "지금 유럽 컬렉터들은 오를 대로 오른 중국 현대미술의 부담스러운 가격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일본이나 인도 또는 덜 알려진 아시아 현대미술 쪽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며 "한국 작가들은 서구미술과 다른 차별화 전략으로 런던 뿐 아니라 세계미술시장에 진출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며 작가들을 발굴, 지원할 수 있는 화랑들의 전문적인 프로모션과 국가의 정책적 지원이 맞물린다면 세계 미술계의 높은 벽도 넘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장동광씨는 "유럽 미술계에 하나의 주체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신적 뿌리에 대한 각고의 통찰과 각성을 통해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언급했으며 문인희씨는 "한국 미술의 국제화를 위해 국제적 감각을 갖춘 큐레이터 양성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적절한 동기부여와 보상이 큐레이터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현장 경험을 토대로 한국현대미술의 정체성을 논한 이 자리에서는 한국미술시장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건수 편집장은 "작품 판매가에 의해 작가의 소용가치가 결정되는 것이 현재 미술계 분위기"라며 "미술 토대에 대한 투자와 새로운 작가의 씨앗을 심을 수 있는 토양을 준비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강선학씨는 "작품성이 아니라 교환가치로 작품을 판단하는 것이 오늘의 한국 미술시장"이라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는 무엇보다 시장에 대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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