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농촌진흥청의 폐지를 반대한다.

입력 2008-02-18 07:00:00

지난 일 년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신물질연구소에서 연수 후, 귀국해 신문을 보다가 어처구니없는 기사에 몹시 당황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보고한 정부조직개편안에 농촌진흥청 산하 9개 연구기관을 모두 정부출연연구기관화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는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으로 위기에 처한 농업을 최우선으로 회생·발전시켜야할 정부가 오히려 농업의 뿌리를 뽑아버리려 한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게 했다.

선진국이 되려면 식량의 자급자족은 기본조건이다. 농촌진흥청은 주곡의 자급자족을 이룩해 보릿고개를 없앰으로써 한국 근대화에 기틀을 마련했다. 현 시점에서 오히려 강화시켜야 함에도 이를 폐지하겠다는 것은 아무리 경제논리를 앞세운다 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 발상이다.

현재 세계 모든 국가들은 식량의 안전확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농업선진국도 우수품종개발과 고품질의 안전농산물 생산에 국가가 주축이 되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농산물 수출증대를 위해서다.

그렇지 않아도 현재 우리 농업은 값싼 외국 농산물의 유입으로 기반 자체가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다. 국토는 좁고 인구는 많은 국가적 약점으로 기술농업으로의 전환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실정이며, 바로 이 때문에 농업연구는 국가가 직접 나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농업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조건은 한번 무너진 농업기반을 복구하려면 막대한 노력과 긴 세월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또한 농업분야의 연구는 단기간에 성패를 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관성을 갖고 오랜 기간 동안 체계적이고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일시적으로 이익이 있다고 덤빌 수도 없고, 지금 당장 수익성이 없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이 같은 연구를 하는 농촌진흥청을 정부출연기관으로 바꾸면 일시적으로는 효율성이 제고될 수도 있을지 모르나, 대단히 위험한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모든 연구가 인기 있는 분야에만 치중되어 농업의 전반적인 개발이 취약해질 수 있다. 나아가 농촌진흥청의 가장 중요한 업무인 기술 보급의 기능이 상실될 위험도 있다. 농촌진흥청은 농업과 관련된 연구기능과 지방행정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이를 폐지하려는 계획은 우리 농업을 송두리째 포기하자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농업이야말로 국가와 민족의 공공이익을 보장하는 산업이다. 농업은 식량생산 외에도 이산화탄소의 감소, 산소공급, 홍수방지, 온도조절, 풍경 제공 등 많은 공익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절대 외면해서는 안 된다. 때문에 이를 지켜야 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

미국의 펜실베이니아주는 농업으로 번성했던 곳이었으나, 현재 주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연구는 나노기술의 개발이다. 대학과 연구소에 기업들이 투자하여 나노기술개발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곳 역시 농업에 대한 기업의 투자는 거의 없어, 주 정부가 특별 예산을 책정하여 그 기금으로 농업연구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산업혁명으로 세계를 제패했던 대영제국이 농산물 부족으로 선두대열에서 밀려났던 일이나, 거대한 소련이 식량부족으로 산산 조각으로 붕괴된 사실을 생생하게 기억하면서, 어찌하여 농업의 중심 연구기관을 폐지할 발상을 할 수 있는지 놀랍다. 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값싼 외국농산물을 수입해 먹고 비싸게 공산품을 수출하면 큰 이익을 볼 것이라는 셈법에 익숙해 있지는 않은지 궁금증을 갖게 한다.

농촌진흥청의 폐지는 당장 그 영향을 깨닫지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얼마나 잘못된 판단이었던가를 절실히 느끼게 될 것이고 5년 후에는 반드시 부활을 논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제 출발하려는 새 정부는 농촌진흥청을 폐지할 것이 아니라, 국가기관으로 존속시켜 350만 농민의 수요에 맞추는 지도사업을 강화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국민의 식량창고를 튼실하게 하는데 이바지하고, 안전하고 품질이 우수한 농산물생산의 연구기지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최정(농학박사·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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