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이정의 독서일기]내 인생, 단하나뿐인 이야기

입력 2008-02-14 15:50:36

경쟁·커뮤니케이션 능력보다 포용하는 정신 먼저

내 인생, 단 하나뿐인 이야기 / 나딘 고디머 외

서해안 검은 갯가에 연일 사람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는 소식이다. 시간이든 물질이든'나'우선인 세상에서 자기가 가진 것의 일부나마 내놓는다는 것은 귀하고도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이 책 또한'기부'한 글들로 만들어졌다.

'나딘 고디머'가 기획했고 세계적인 유명 작가 20명이 힘을 보탰다 한다. 나딘 고디머는 작가들도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고심하다가, 이 시대의 작가들 중 자신이 가장 높게 평가하는 스무 명에게 편지를 보내어 자선 작품집의 취지를 설명하고 작품 하나씩을 청했는데, 한 사람도 빠짐없이 흔쾌히 응해주더라 했다. 책의 판매 수익금은 세계 4천만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기금으로 쓰여진다고 한다.

수전 손택, 오에 겐자부로, 살만 루슈디, 가브리엘 마르케스, 주제 사마라구, 권터 그라스...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작가들이'인생에서 단 하나뿐인 이야기'를 하려고 한자리에 빙 둘러앉은 것 같다. 돌아가며 스물 한 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서로 다른 문화적 토양 때문인지 작품들마다 독특한 개성을 품고 있다. 그러나 문화의 차이와 정서적 경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언어와 표현 방법은 달라도 사람의 감정은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나딘 고디머의'최고의 사파리'가 인상적이다. 그가 이토록 의미있는 일을 기획한 연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비극을 어린 소녀의 시선을 빌려 차분하고 과장 없는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

가뭄과 내전이 덮친 아프리카 대륙의 참상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지도 모른다. 얼마 전 신문에서 진흙으로 쿠키를 빚어 건물 지붕 위에서 말리고 있는 사진을 보았다. 기아에 직면한 사람들이 흙에다 소금과 쇼트닝을 섞어 진흙과자를 만들어 먹고 있었다. 그날 신문에는 인수위의 영어 몰입교육이니 하는 말도 떠들썩하게 실려 있었는데, 글로벌 경쟁시대에 즈음하여 영어로 전 국민을 무장시켜야 한다는 그 소식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물론 정치·경제의 세계화에서'의사전달 능력'은 경쟁력과 비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언어는 그런 기능적 측면만 있는 게 아니다. 그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언어가 정신과 현실을 창조하고, 바꾸며, 보존하고 이어간다는 사실이다. 언어는 정신과 전통을 지닌 살아있는 생물이나 마찬가지다. 힘없는 언어는 쇠퇴와 사멸로 이어진다. 안 그래도 오염되고 훼손된 국적불명의 국어가 이미 국민의 정신 깊숙이 침투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 책의 작가들도 제각기 다른 문화적·정서적 언어로 글을 썼지만 다들 높고 아름다운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경쟁에선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선행돼야 할 것은 바로 교감하고 공감하는 정신일 것이다. 그래서 영어를 배우는 것도 좋지만 지금 우리에게 더 절실한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감수성과 인류공동체로서의 공감력이 아닐까 싶다.

1천만 어린이가 절대 빈곤으로 숨져가고 있는 아프리카는 절대'다른 세상'이 아니다. 기름으로 오염된 서해안보다 좀 더 거리가 떨어져 있을 뿐인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세련된 도구로 무장한 전투적인 정신보다 함께 이해하고 포용하는 정신이 더 먼저다. 그것이 더 강하고 더 아름답다.! 봉사든 보시든 기부든 다 거기에서 나온다.

bipaso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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