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터 오가는 길손, 시인묵객 정취 그대로…
낙동강과 내성천 그리고 금천 세 강줄기가 몸을 섞는 곳,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나루터. 그 옛날 나루를 오가는 길손들에게 허기를 면해주고, 때로는 묵객들이 쉬어가는 공간을 제공하던 낙동강 1천300리 물길의 마지막 주막 '삼강주막'.
지난 2005년 이곳 삼강주막을 지키던 이 시대의 '마지막 주모' 유옥련(90)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적막하던 주막집이 최근 다시 사람들의 발길로 부산해졌다. 지난해 말 버려졌던 주막이 복원된데 이어 지난달 17일부터 영업을 재개했기 때문이다.
삼강주막의 새 주인이 된 권태순(70·풍양면 삼강리) 주모를 만났다. "문을 연 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손님들로 눈코 뜰 새가 없어요. 나야 괜찮지만 우리 영감이 몸살이 안 날지 모르겠어요." 주모 권 씨는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다고 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주중에는 하루 평균 70~80명, 주말에는 200여 명이 주막을 찾는다고 했다. 인근 상주 함창읍이나 문경 영순면은 물론 대구·서울·울산 등 전국 각지에서 찾고 있다고. 권 씨는 이 때문에 되레 손님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집이 너무 작고 손님 맞을 방이 너무 비좁아요. 그래서 기다리다 못해 되돌아가는 손님들이 많습니다. 멀리서 찾아오셨는데…미안할 따름이죠, 뭐."
삼강주막은 30㎡ 규모로 7~8명이 앉을 수 있는 방 두 개에 부엌 하나, 그리고 다락과 툇마루가 전부다. 지난 1일 오후에도 차례를 기다리다 지쳐 주막과 나루터만 둘러보고 돌아가는 관광객이 눈에 띄었다. 권 씨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를 3년 전 세상을 뜬 유 할머니에게서 찾는다.
"옛날 추억 때문에 찾아 온 사람도 있지만, 70여 년간 주막을 지켰던 인심 좋은 유 할매에 대한 기억 때문이겠지요." 권 씨는 유 할머니를 무뚝뚝했지만 인심 좋고 속정이 깊은 주모로 기억하고 있다. "할매는 동네 술도가에서 탁주를 받아다 팔았어요. 당시야 돈이 있었습니까. 대부분 손님들은 술을 마시고는 외상을 달아놓았지요. 외상값을 적어놓은 부엌 벽면을 보면 알 수 있어요."
권 씨는 50년 전 이웃면인 유천면 송지리에서 이곳으로 시집 오면서 나루를 건널 때 처음 유 할머니를 만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 할머니와의 특별한 인연을 강조했다.
"강변에 자리 잡은 주막엔 의외로 먹을 물이 귀했어요. 그래서 할매는 매일 저희 집에서 동이에 우물물을 받아 머리에 이고 나르거나 손수레에 물을 실어다 먹었습니다. 할매 뒤를 이어 내가 주모가 된 것을 보면 보통 인연이 아닌가 봐요."
권 씨는 2005년 10월 유 할머니 장례를 치르면서 자식들이 할머니가 쓰던 그릇이나 반짇고리·옷가지·이불 등을 죄다 태워버린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권 씨는 지난 1월 마을 주민회에서 여럿 경쟁자를 제치고 주모로 선발됐다. 나이도 적당하고 친절해 손님을 상대해야 하는 주모로는 적격이었기 때문. 그러나 무엇보다 술을 잘 빚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아 선발됐다고 남편 정수영(70) 할아버지가 귀띔했다.
"다들 옛날 막걸리 맛이 난다며 많이 찾아요. 스무한 살에 시집와서 술을 빚기 시작했으니 한 50년이 다 됐네요." 현재 이곳에서 팔고 있는 음식은 솔 향기가 은은히 풍기는 막걸리를 비롯해 배추전·묵·두부 등 토속 음식이다. 옛 주모의 인심을 이어 막걸리 한 되에 5천 원, 묵과 두부는 2천 원, 배추전은 3천 원 등 안주 값도 싸다.
이 일을 시작한 후 권 씨는 새벽녘에야 잠자리에 든다. 이튿날 팔 술을 거르고, 두부를 만들고, 묵을 쑤다보면 새벽이 되기 일쑤다.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본 자식들이 그만두라고 하지만 권 씨는 주막을 지킬 생각이다. 그것이 유 할머니의 뜻을 받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감있는 주막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한 식구처럼 지내던 유 할머니를 생각하며 이곳을 오래오래 보존하겠습니다."
예천·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 다시 태어난 낙동강 '삼강주막'
예천군 풍양면의 삼강주막은 삼강나루의 나들이 객에게 허기를 면해주고 여행길의 고단함을 풀어주던 곳이었다. 때론 보부상의 숙식처로 때론 시인묵객들의 쉼터로 이용됐다. 소금배가 없어진 뒤에는 강을 건너 서울 대구 등으로 가려는 사람들로 붐볐으나 나룻배가 사라진 1970년대 들어 다리를 놓고 둑을 쌓으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완전히 끊겼다. 예시대상을 엿볼수 있는 삼강주막은 귀중한 건축자료로 가치가 있어 2005년 경북도 민속자료 134호로 지정됐다.
안타깝게도 오랫동안 주막과 함께한 유옥연 주모가 지난 2005년 세상을 떠나면서 그대로 방치돼왔다. 주막을 아끼던 사람들의 안타까움과 섭섭한 마음이 통해서였을까. 죽었던 삼강주막이 지난해 다시 살아났다. 경북도가 1억 5천만 원을 들여 훼손된 목재부와 지붕을 걷어내고 방 2개와 다락, 툇마루, 원두막(정자)2채를 갖춘 옛날 토담 초가주막을 그대로 복원한 것이다. 글을 모르던 윤 할머니가 외상값을 큰 금 작은 금으로 표시했던 흑바람벽도 살려냈다.
옛정취를 찾아보기 힘든 요즘, 막걸리 한 사발에 배추전과 두부로 목을 축이려는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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