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시인 백석의 '통영 사랑'

입력 2008-02-05 07:43:32

바다, 생명, 문학 그리고 통제영의 고장…여인에 대한 그리움 통영사랑으로

평안도 정주에서 태어난 백석이라는 시인으로부터 통영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통영 사람이 아니면서도 가장 통영 사람을 닮은 사람이 바로 백석이다. 백석의 통영 사랑은 각별하다. 그의 시에는 '창원도', '고성가도', '삼천포', 마지막으로 '통영'까지 남쪽 지방의 지역명이 많이 나온다. 경상북도 영일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오랫동안 삶을 영위하고 있는 내가 통영을 그리는 마음도 백석과 다르지 않을 게다.

옛날에 통제사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의 처녀들에겐

아직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 같이 말라서 굴껍질처럼 말없이 죽는다는

이 천희의 하나를 나는 어느 오랜 객주집의

생선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불그레한 마당에 김냄새 나는 비가 나렸다. (백석, '통영1' 전문)

유월의 바다에 내리는 비는 쓸쓸하다. 특히 옛날에 통제사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의 천희라는 이름을 지닌 처녀들에겐 더욱 그렇다. 쓸쓸함은 '미역오리 같이 말라서 굴껍질처럼 말없이 죽는다.'는 표현에서 더욱 배가된다. 백석은 아직도 만나지 못한 통영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아직 백석에게 있어 통영은 마른 굴껍질이었고 '생선가시가 있는 마루방'이었고 '김냄새 나는 비가 내리는' 곳이었고 '낡은 항구'였던 셈이다.

하지만 백석은 1935년 6월 통영을 직접 방문한다. 그 당시 같은 직장(조선일보)에 다니던 친구 신중현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 자리에서 백석은 영원한 연인이 된 통영처녀를 만나 첫눈에 반해 버린다. 그녀가 바로 '난'이다. 당연히 통영을 그리는 백석의 언어도 달라진다. 이제 통영은 백석에게 비가 내리는 쓸쓸한 풍경이 아니라 북소리가 들리고 뱃고동이 우는 살아있는 풍경으로 다가온다. 당연히 그것은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그리움의 다른 표현이리라. 백석은 그 해 겨울 두 번째로 통영을 방문한다. 시 내용을 볼 때 구마산 선창에서 배를 타고 통영항으로 오는 여정이었으리라. 사랑하는 사람이 살고 있는 통영은 이미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 되어 있었다. 차가운 겨울바다의 바람도 백석의 마음을 가로막지 못했다.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錦)이라든 이 같고

내가 들은 마산(馬山) 객주집의 어린 딸은 난(蘭)이라는 이 같고

난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는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 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서 오신 듯한데 동백꽃이 피는 철이 그 언제요

옛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듯 울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백석, '통영2' 부분)

하지만 이 방문에서 백석은 '난'을 만나지 못한다. 사랑하는 여인 '난'을 만나지 못한다. 명정골에 살았던 '난'은 개학준비를 하느라 서울로 떠나버리고 없었다. 그래도 백석은 그녀가 사는 명정골을 찾아간다. 명정골은 지금의 통영시 명정동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백석도 그녀가 사는 곳이 어디인지 궁금했을 것이며 그녀의 사는 마을이 보고 싶어 찾았을 게다. 결국 백석은 '옛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어서' '울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 어긋나버린 길 끝자락에서 그저 '손방아만 찧다' 돌아서야 했다.

한준희(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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