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는다] 그의 평등 화두는 여전히 유효

입력 2008-02-02 07:14:19

칼 마르크스/박영균 지음/살림 펴냄

소련은 무너진 기억조차 감감하고 중국 역시 자본주의로 옷을 갈아입은 지 오래다. 더구나 세상을 바꾸겠노라고 소리쳤던 소위 386세대가 주축이 되었던 참여정부마저 철저히 외면당한 이 마당에 칼 마르크스를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어리석은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얼마 전 서울대에서 정년퇴임한 김수행 교수의 말처럼 진보를 자처하면서도 진보에 역행한 이들이 문제이지 아직도 진보를 가슴에 안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마르크스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 건국대학교 강사인 박영균이 쓴 '칼 마르크스'는 의미가 있다.

기존의 마르크스를 다룬 책과는 달리 어렵지도 않고 분량이 많은 책도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결코 아니다. "나는 이 책을 마르크스의 삶과 사랑, 그리고 인간해방을 위한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모색이 어우러진 시대정신을 되살려내고자 했다."라고 말하는 저자는 마르크스가 어떻게 평생을 인간에 대한 끝없는 애정과 인간의 역사에 평등이라는 중요한 화두를 던져왔는가를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것처럼 인류의 모든 역사는 바로 사랑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다. 그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역사의 발전을 가져왔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오늘 날 자본주의는 오로지 개인의 욕망을 위해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절대적 선인 것처럼 부추기고 서점의 주요한 자리에는 소위 처세술과 재테크를 위한 실용 서적이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열일곱의 나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쓴 논문의 "한 젊은이가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 그것이 비록 다수가 가지 않는 길이라 할지라도 인류를 위한 길이라면 그것은 정당한 길이다."라는 글귀는 오히려 지금 이 시점에 너무나 빛난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주고 신에게서 형벌을 받았듯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한 영혼의 고난의 길이 각색되고 왜곡되는 것은 진정 슬픈 일이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르른 생명의 나무이다."라는 괴테의 경구를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던 마르크스가 말년에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선언했던 것은 결국 무슨 주의에 빠져 인간의 실존을 잃어버린 이들을 향해 던지는 준엄한 경고가 아니던가? 이 책을 읽는 내내 젊어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면 바보이고, 나이가 들어서도 마르크스주의자이면 더 바보라는 말의 진실이 나이가 들어 젊은 날의 열정을 지키지 못했던 부끄러움으로 와 닿는다. 95쪽. 3천300원

전태흥(여행작가·(주)미래데이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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