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넘치는 규제

입력 2008-01-29 09:20:51

"참 터무니없지만 하라니까 해야죠, 업자는 봉(?) 아닙니까."

지난해 모 건설업체 관계자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아파트 모델하우스 설치를 위해 A구청에서 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한 심의위원이 제동을 걸었다고 했다.

"외관 색깔이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자꾸 지적을 하기에 회의가 끝난 뒤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업체를 지정하더니 공사를 그곳에 맡기라고 하더군요."

이 관계자는 "요구는 수용했지만 내가 알기로 모델하우스 심의를 하는 자치단체가 전국에서 A구청 밖에 없는데다 외부 심의위원이 이런 요구를 하는 경우도 요즘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 사례. 지난해 시로부터 아파트 사업 승인을 받고 B구청에 분양 승인을 신청했지만 구청에서 사업장 뒤편 아파트 주민들의 조망권 민원이 있다며 분양 승인을 계속 미뤘다고 했다.

"요즘 건설업체들이 웬만한 민원은 다 수용합니다. 후에 알고 보니 뒷단지가 B구청에 영향력 있는 구의원 지역구라고 하더군요."

이 업체 관계자는 "합법적으로 사업승인을 받은 단지에 대해 민원을 이유로 절차 행위인 분양 승인을 해주지 않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업자인 이상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전체를 논하기에는 아주 단편적인 두 가지 사례지만 대구의 모습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출범한 뒤 '규제 개혁' 바람이 불고 있다. 규제 개혁 핵심은 불필요한 법 제도와 정부 부처, 그리고 넘쳐나는 각종 위원회다.

건설 분야 취재를 맡은 2년 동안 '비상식적'인 일들을 어렵지 않게 접해왔다. 물론 위의 두 사례도 포함된다. 일부지만 자치단체나 지방 의원은 물론 각종 심의에 참석하는 외부 자문위원들까지 '규제'의 달콤한 맛을 즐기며 법과 상식을 뛰어넘는 요구를 하고 업체들은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현대건설 CEO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당선 직후 맨 처음 일성으로 '규제 개혁'을 외쳤을 때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이란 생각을 한 것도 이러한 경험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규제 공화국'이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대구'가 그중 유별나다는 것이다.

외지 업체들이 대구에서 사업을 시작한 뒤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 "대구 왜 이러죠.". 정말 사업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대구의 시정 구호 중 하나가 '기업 하기 좋은 도시'다. 중앙 정부 못지 않게 불필요한 규제와 심의, 그리고 각종 위원회를 하루빨리 정리, 통폐합해 대구가 정말 '기업 하기 좋은 도시'로 변신하기를 기대해본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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