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집'을 기억하시나요…대구문학 특집 재조명

입력 2008-01-29 07:00:16

'어깨에 잔뜩 힘을 준 詩(시)/굳어서 뻣뻣한 詩/이런 詩가 손쉬워/ 사람들은 다들 좋아한다./그럴 수도 있는 일/저마다 기호는 나름이니./그러나 완전히 어깨를 푼 詩/비어서 비로소 가득한 詩/이런 詩를 낳기 위해선/아직도 끈질기게/살아 남아야 한다./살아 남아서/ 아내도 자식도 미리 다 보내고/시린 노을의/불을 쫓는 수리도 닮아 보아야 한다./그리곤 순순히 돌아 미쳐 보아야 한다./바이없는 종국의/잠이 내릴 때까지.'(신동집 '이런 詩')

담담한 구술체의 시 속에서 시의 원형을 찾으려는 시인의 피나는 노력이 엿보인다. 시인 장옥관은 "'이런 詩'는 대교무교술(大巧無巧術·뛰어난 재주는 기교가 없다)의 경지를 보여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8·15 해방 전 대구시단에 이상화, 이육사가 있었다면 해방 이후에는 김춘수와 신동집이 있었다. 김춘수에게 '꽃'이 있었다면, 신동집에게는 '빈콜라병'이 있었다. 그러나 세인들은 김춘수는 기억하며, 신동집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시인들은 신동집을 '기억되지 않는 천재 시인'으로 곧잘 얘기한다. 그가 저평가받아왔고, 지금부터라도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은 편이다. 대구문인협회(회장 문무학)가 발행하는 '대구문학' 통권 73호(겨울호)가 '대구가 낳은 한국문학·문학인'으로 신동집의 시 세계를 다룬 것도 이의 연장선이다.

대구에서 태어난 신동집(1924~2003)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근원적인 의미탐구를 집요하게 추구한 시인이었다. 6·25 전쟁의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자의 존재론적 갈등을 형상화한 초기 작품 '목숨'(1954)을 비롯해 '송신'(1973), '오렌지'(1989) 등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주지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계열의 시를 주로 발표했다. 중기 이후에는 삶에 대한 뜨거운 서정과 철학적 사유가 바탕을 이루는 시와 서구적인 감각과 동양적 예지와의 조화를 추구하는 시세계를 추구했다.

'빈 콜라병에는 가득히/빈 콜라가 들어 있다./넘어진 빈 콜라병에는/가득히 빈 콜라가 들어있다./…'('빈 콜라병') 빈 콜라병의 존재를 역설적인 시적 기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존재탐구에 대한 그의 시선이 절묘하게 잘 묻어나는 시다.

문학평론가이자 동리목월문학관장인 장윤익 씨는 '존재와 즉물세계의 만남'에서 "사물에 대한 인식이 더욱 깊어지고, 끊임없이 미의 새로운 모습을 발굴하려는 순수한 미의식의 결실"이라고 말했다.

신동집은 1983년 고혈압으로 쓰러진 뒤에도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다.'바이 없는 종국의/잠이 내릴 때까지' 그는 시에 매달렸고, '불을 쫓는 수리'의 열정을 보여준 그였다.

서지월 시인은 '신동집 시인을 말한다'에서 "우리는 지금 신동집 시인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며 "영원한 예술장르인 과거 문학작품을 놓치고 지나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고 적고 있다.

지난해 9월 대구문학제에서 신동집의 시 '별빛이 나의 붓을 따순다'를 발레 공연으로 선보인 문무학 대구문인협회장은 "신동집은 한 시대를 뛰어넘은 걸출한 시인"이라며 "앞으로 다양한 행사를 통해 그를 재조명하겠다."고 말했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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