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지상 최대의 사기꾼 '반 메헤렌' 부활하다

입력 2008-01-26 07:07:03

우광훈 '베르메르 vs. 베르메르'

지상 최대의 사기꾼은 반 메헤렌(1889~1947)이다.

그는 '진주 귀고리 소녀'의 화가 베르메르 위작 사건의 장본인이다. 17세기 네덜란드 풍속화의 거장인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을 완벽하게 재현해 독일 나치스 사령관 괴링에게 팔았다가 매국노로 몰리자 위작임을 실토해 세인을 놀라게 했다.

희대의 위작 사기꾼이지만 그에게 '천재'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이도 있다. 그가 그린 그림 속에서 베르메르의 예술혼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47년 심장마비로 사망한 후에도 어느 작품이 진짜고 가짜인지 오랫동안 진위를 가릴 수 없었다.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소설가 우광훈(39·대구 동촌초교 교사) 씨가 '반 메헤렌' 사건을 그린 소설 '베르메르 vs. 베르메르'(민음사 펴냄)를 냈다.

"몇 년 전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 사건을 접했습니다. 사건도 재미있지만, 위작 동기가 공감이 가서 그의 삶을 소설로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소설은 베르메르 한국 특별기획전을 준비하는 미술사학자이자 큐레이터인 '나'가 주인공이다. 베르메르의 미공개작을 세상에 발표하고 싶다는 편지를 받고 네덜란드로 향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곳에서 가브리엘 이벤스의 딸과 베르메르의 그림 '지도를 바라보는 여인'을 만나면서 가브리엘의 드라마틱한 생애를 좇아간다. 이야기는 현대의 '나'와 가브리엘의 삶을 중첩시킨 액자형태로 펼쳐진다.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덧댄 이른바 팩션(faction) 소설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장정일 씨가 작품해설을 썼는데 흥미롭게 그 제목이 '가브리엘 이벤스의 행장(行狀)'이다. 가브리엘 이벤스는 반 메헤렌 역을 맡은 가상 인물이다. 그런데 그의 생애를 세밀하게 그리고 있어 독자들은 실제 인물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작품해설까지 허구냐?"는 말에 "독자들이 숨은 그림을 찾듯 만든 장치"라며 "픽션이 가미되지 않은 역사가 있었더냐?"며 "역사가 바로 팩션"이라고 했다. 허구인 소설로 그렸지만, 진실이 중요할 뿐 형식은 별로 상관없다는 반응이다.

소설은 당시 미술계 안팎의 시대적 상황과 암스테르담의 풍경 등이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다. 그는 "암스테르담에 가긴 했으나 소설에 큰 도움을 받지 못했다."며 "대신 도서관과 서점을 뒤져 찾은 자료가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현장에 충실한 로케이션 작가가 있는 반면 자신은 철저하게 세트에서 지향하는 세트작가가 있다. 그는 "철저하게 세트를 즐기는 편"이라며 "모든 것이 나만의 허구이고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나치 시대의 유럽과 현재를 오가는 위작공방이 스릴러적으로 흥미롭게 펼쳐지지만 진정한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표를 저변에서 깔고 있다. 진짜 베르메르와 가짜 베르메르를 동격시하는 소설의 제목처럼 그는 한 없이 따뜻하고 이해심 넓게 가브리엘을 그려내고 있다.

연인인 조안나가 몸까지 팔 지경인 된 화가 가브리엘이 결국 베르메르의 작품을 모사하게 되는 과정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버려지고 따돌림' 받는 것에 저항하는 작가 우광훈의 시선이 그대로 묻어난다.

최근 한국소설들이 자폐아적이고 지엽적인 부분에 그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학평론가인 김성곤 서울대 교수는 "'베르메르 vs. 베르메르'는 한국 문학의 지평을 획기적으로 확대한 특이하고도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평했다.

1969년 대구에서 출생한 우광훈은 대구교대를 졸업하고 199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소설집 '유쾌한 바나나 씨의 하루'와 장편소설 '플리머스에서의 즐거운 건맨 생활' '샤넬에게'를 냈으며, 제23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338쪽. 1만 1천 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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