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마다 雪레요" 개썰매 타는 사람들

입력 2008-01-26 07:21:14

순백의 설원에서 개와 사람이 달린다.

오는 2월 15일부터 사흘간 휴전선을 넘어 금강산에서 개썰매 대회가 열린다. 우리나라 대표개인 진돗개와 풍산개도 눈썰매를 끌고 남북간의 화합의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 같다.

개썰매를 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개썰매도 사계절 스포츠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2월 금강산 개썰매 선수권대회 출전을 위해 맹훈련하고 있는 개썰매 동호인들을 만났다. 눈이 귀한 대구지만 개썰매 동호인들은 다른 지역보다 월등하게 많다. 금강산대회에도 대구에서만 5, 6개팀이 나선다.

윤종왕(41) 씨는 '대한독스포츠연맹(KFSS)'의 선수랭킹 3위에 올라있는 베테랑이다. 국내에서 열리는 모든 대회에 다 참가하는 마니아다. 평소 개를 기르고 있었는데 자신이 키우는 '보더콜리'도 개썰매를 끌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이 개썰매와 인연을 맺은 계기가 됐다. 윤 씨는 보더콜리가 총명해서 (개썰매를)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3년 전 대회에 첫 출전했는데 '썰매개'가 아니어서 눈 위에서는 체력이 약했다.

그래서 그는 본격적으로 썰매개로 이름난 허스키와 맬러뮤트를 기르면서 개썰매를 시작했다. 하긴 진돗개도 썰매를 끌 수 있을 것 같아 훈련을 시켜보기도 했다. 진돗개는 스피드가 떨어진다.

"정말 재미있어요.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평소 낮에는 못하고 밤늦게 훈련할 때가 많은데 그때는 개와 제가 한몸이 되어서 달리게 되는데 모든 것을 다 잊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눈이 귀한 대구에서는 썰매에 바퀴를 달아서 훈련을 할 때가 많다.

개썰매를 타는 사람들 중에는 의외로 미혼남녀들이 많다. 윤 씨 외에 김대현(30) 씨와 강현지(32·여) 씨, 정희태(34) 씨 모두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개를 좋아하는 애인이 있다. 특히 강현지 씨는 개썰매에 빠져 동호회 활동을 먼저 시작하면서 사귀던 정 씨를 함께 가입시켰다.

강현지 씨, 개썰매를 탄다. 정말 잘 탄다. 첫 출전한 2007년 개썰매 대회에서 4위를 했다. 그냥 개썰매가 좋아서 탄다고 했다. 낮에는 달서구 월성동의 한 미용실에서 헤어 디자이너로 일하지만 밤이 되면 개를 데리고 훈련에 나선다. "개썰매를 하니까 눈 구경을 원없이 하게 됐어요. 눈 내린 강원도도 자주 가게 돼요. 경기는 힘들지만 개썰매를 타면 늘 생활에 활력을 되찾게 되는 것 같아요." 그녀는 "이번에 금강산에 가게 된 것도 너무너무 좋다."면서 "내가 사랑하는 개와 함께 금강산에 가서 뒹굴 수 있는 것도 행운"이라고 말했다.

아무나 개썰매를 탈 수는 없다. 어느 정도 운동신경이 발달돼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자신이 기르는 개와 호흡을 맞추는 교감이 있어야 한다. 개 주인이 "하이크!" 혹은 "뛰어!"라고 명령을 내릴 때 개는 곧바로 뛸 수 있을 만큼 순발력과 판단력까지 갖추고 있어야 한다. 저녁마다 개썰매 뒤에 타이어를 매달고 뛰기도 하고 오르막을 셀 수 없이 오르락내리락 거린다. 개의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다.

매일같이 개와 함께 살다 보니 가끔씩은 남자친구보다 개를 더 사랑할 때도 있다. 그럴 때 남자친구가 질투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그 사람도 개를 더 좋아할 걸?"이라고 반문하는 그녀. 올 2월에는 금강산에서 개썰매를 타고 질주하면서 긴머리 날리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참가하는 게 매우 좋아요. 상위권 선수들만 참가하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는 않아요."

그녀는 금강산대회에 개 한 마리가 끄는 '1도그'와 두 마리가 끄는 '2도그' 경기에 나설 예정이다.

두 마리 이상의 개를 묶어서 대회에 참가할 때는 개의 특성을 잘 살펴서 배치해야 한다. 이를 테면 힘이 좋은 개는 뒤쪽에 배치하고 스피드가 좋고 판단력을 갖춘 '리더'를 앞쪽에 배치한다. 그렇게 해서 훈련을 통해 호흡을 맞춘 후 대회에 나가야 제 실력을 낼 수 있다. 하긴 '맬러뮤트'종은 힘이 좋고 '허스키'종은 스피드가 좋기로 정평이 나있다.

어떤 개나 다 썰매를 끌 수가 있을까? 가능하다. 그러나 썰매개는 기본적으로 알래스카나 남극 등에서 잘 적응된 개가 적합하다. 진돗개와 풍산개 같은 우리나라 개도 썰매를 끌 수는 있지만 눈위에서 제대로 달리지는 못한다고 한다. 강현지 씨는 경비견으로 활용되는 '로트바일러'종과 맬러뮤트를 한 조로 엮어 '2도그' 경기에 나선 적이 있다. 물론 경기에 나서기 전에 로트바일러를 지독하게 훈련시켰다. 로트바일러가 경기에 나선 것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비웃었지만 그녀는 보란듯이 4위로 들어왔다. 박수를 받았다.

김대현(30) 씨 역시 평소 개를 키우다가 TV에 나오는 개썰매 대회를 보고서 홀딱 반했다. 요즘은 자신이 타는 썰매까지 직접 제작한다. "개들도 평소에는 눈 한 번 제대로 밟아보지 못하는데 개썰매를 하면서 눈을 밟고 뛰니까 좋아한다." 그는 "대회에 나서서 입상하면 기분이 좋지만 완주하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면서 "무엇보다 개들이 나를 믿고 호흡을 맞춰서 함께 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쁘다."고 말했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사진·정우용기자 vin@msnet.co.kr

♠ 개썰매, 도그스포츠란?

'슬레드 도그(sleddog) 스포츠'는 개썰매(슬레딩)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개썰매 외에도 바퀴달린 썰매를 타는 '카팅'과 '스쿠터링' 개와 함께 달리는 캐니크로스 등 다양한 종목이 있다. 슬레드 도그 스포츠는 1988년 제15회 동계올림픽 전시종목으로 채택되면서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국내에는 대한독스포츠연맹이 주최한 2004년 제1회 개썰매대회를 시작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2천여 명의 동호인이 있으며 대구·경북에는 100여 명이 있다.

썰매를 끄는 썰매개는 주로 맬러뮤트와 허스키, 샤모에드 등이 사랑 받고 있지만 훈련만 받으면 어떤 종류의 개도 다 썰매를 끌 수 있다. 달마시안이나 포인터, 세터 등도 경기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개썰매를 타는 것은 위험하지 않을까. 일단 썰매개들은 훈련을 통해서 썰매개로 성장하기 때문에 안전에는 큰 문제가 없다. 또 개주인과 평소부터 호흡을 맞춰서 교감하기 때문에 물리는 등의 사고는 없다. 다만 개썰매 역시 빠른 속도로 달리기 때문에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운동신경이 발달돼 있는 사람이어야 즐길 수 있다.

개썰매 대회에서는 눈위에서 달리는 눈썰매가 국내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있다.

오는 2월 15일~17일 금강산에서 열리는 '2008 한국 개썰매 선수권대회'는 군사 분계선을 넘어 북한지역에서 치러지기 때문에 국내대회보다 참가선수단이 단출하다. 40여 팀 100여 명이 참가한다. 그러나 지난 1998년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천 마리의 소떼를 몰고 방북한 이후 두 번째 남측의 동물이 군사분계선을 넘는다는 점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다.

무엇보다 금강산 관광 10년간 동물들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던 북한의 '금강산지구 검역사무소'가 최근 대한독스포츠연맹에 조건부 허가 통보를 해 와서 새 정부출범을 앞두고 남북 관계 개선의 시금석이 될 가능성도 높다. 이번 대회는 한 마리 썰매 450m, 두 마리 썰매 1.1㎞, 네 마리 썰매 2.1㎞ 스프린트 등 3종목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서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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