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도의 오페라 이야기] ⑩쟈코모 라우리볼피

입력 2008-01-26 07:52:56

쟈코모 라우리볼피(1892~1979) 81세에 오페라 아리아 리사이틀

라우리-볼피는 테너 역사상 가장 긴세월(27~67세) 현역에서 활동했으며, 81세에 오페라 아리아 리사이틀을 열 정도의 뛰어난 정력가였다. 그의 화려한 보컬 테크닉은 리릭, 드라마틱할 것 없이 탁월했다. 생존시 이미 그는 하나의 전설이 되었고 사후에 위대한 테너 유산을 남겼다.

그는 11세 때 고아가 되어 알바노의 신학교를 거쳐 로마의 라스피엔짜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했다. 한 성악 콩쿠르에서 2등 입상을 한 뒤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의 당시 가장 유명했던 83세의 바리톤 안토니오 코토니를 사사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으로 관계가 단절, 볼피가 무공을 세우고 돌아왔을때 코토니 선생은 이미 타계한 뒤였다.

그는 코토니의 후계자 엔리코 로사티에게 맡겨졌다. 다시 또 다른 코토니의 제자 에찌오 바시올라에게 사사하던 중 1919년 9월 2일 27세로 로마 근교 비테르보에서 벨리니의 '청교도'로 데뷔한다. 처음에 그는 벨리니가 좋아하던 19세기 벨칸토 거장 쟈코모 바티스타 루비니의 이름을 본떠 쟈코모 루비니라는 가명으로 출연했다. 성공적인 공연 4개월 후 1920년 1월 3일 로마 콘스탄찌에서 푸치니의 '마농 레스꼬' 공연시 에찌오 핀짜 (1892~1957)와 공연하면서 본명을 쓰게 된다.

새로운 테너 출현 소식은 신속하게 전세계 주요 가극장으로 퍼져 계약 요청을 받게 되었다. 1920년 콘스탄찌에서 리오, 부에노스 아이레스, 레노아, 밀라노로, 1922년엔 볼로냐,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와 몬테 카를로 등을 거쳐 1922년 라 스칼라에서 '리골렛토'의 공작역을 맡았다. 1923년 메트에서 활동하며 26편의 오페라를 232회 공연했다. 경제 대공황 시절 질리가 메트를 떠난 시기 그도 이태리로 떠났다. 1940년 초 다시 '메트'로 복귀하려 했으나 2차 세계대전으로 계획이 무산되었다. 무쏠리니는 그에게 대령 계급을 달아주고 노래로 애국을 하라고 명령했다.

전쟁이 끝나고 그의 존재는 다시 부각되기 시작하였으나 음성은 조금씩 쇠퇴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의 경력은 크게 3기로 나ㅊ누어 설명한다. 제1기는 벨칸토 시기로 활동 5~10년 사이 주로 멜로디, 호흡, 눈부신 레가토와 하이 F까지의 고음역 등으로 스스로 '벨칸토의 외로운 기사'라고 불렀다. 제2기에는 30대 후반, 타고난 스핀토 음색에 극적요소를 가미하는 등 노래가 점차 무거워진다. 또한 목소리를 무리하게 사용하고 부담되는 나 등을 요청받게 된다.

제3기는 40대 후반으로 소리는 눈에 띄어 빛을 잃고 일관성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화려하고 전율적인 고음역은 유지했다. 라틴 기질의 그는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경향, 불 같은 성격 등으로 동료 극장 매니저, 지휘자, 오케스트라 단원하고도 다투었다. 그럼에도 1929년 토스카니니는 페르틸레 대신에 라우리-볼피를 베를린 연주에 데려갔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에 대단히 자만했으며, 함부로 말을 해서 사람들이 멀리했다. 그러나 박식하여 성악평론, 음성 훈련 등에 관한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1979년 3월 17일 발렌시아 인근에서 타계했다.

윤성도(시인, 계명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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